'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명사설
이수기 (논설고문)

2016-11-16     경남일보
1905년의 오늘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날로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제로 체결한 을사조약(乙巳條約)을 체결한 날이다. 대한제국은 자주권을 잃고 끝내 경술국치(庚戌國恥)로 일제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경남일보’ 초대 주필이었고 ‘황성신문’ 주필 때 위암(韋庵) 장지연(張志淵) 선생은 민족적 분노를 표현한 일본의 을사조약 체결을 비판하는 명논설 ‘이 날에 목 놓아 통곡하노라’는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황성신문’ 1905년 11월 20일자로 발표해 민족 언론인으로서 뚜렷한 자리를 차지했다.

▶위암은 사설게재 사건으로 구속돼 이듬해 2월, 64일 만에 출옥, ‘대한자강회’를 조직했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했다가 1909년 10월 15일 전국 지방지 중 최초로 발간한 ‘경남일보’의 초대 주필을 맡았다. 위암 장지연은 경남일보에 매천 황현의 ‘절명시’를 실어 마지막으로 저항하는 몸짓을 보였고, 경남일보는 정간을 당했다.

▶말년에 친일논란이 있지만 장지연(1864~1921) 선생은 언론인과 우국지사로 알려져 있다. 경북 상주 출생으로 1894년 진사가 되고, 이듬해 을미사변 때 명성황후(明成皇后)가 시해되자 의병 궐기를 호소하는 격문을 각처에 발송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말하자면 숨을 거둘 때까지 망국을 한탄하며 마산에서 술로 세월을 지새다가 1921년 10월 2일 숨을 거뒀다.
 
이수기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