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알

2016-11-24     경남일보
 

 

 

[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알

저 속에는

어둠에 발효된 빛이 들어있다

밤마다 흘러나온 하얀 빛들이

붉은 벽을 붉은 벽이게 하고

새들의 나무를 숙성시킨다



-김정수(시인)



‘알’이다. 야외에 놓인 바닥조명인지 아니면 알을 연상케하는 조형물인지 알 수 없지만 상관치 않기로 한다. 둥글고 환한 저것을 알이라고 시인이 지칭하는 순간, 우리는 저 알에서 세상을 읽게 된다. 동시에 태초의 빛을 읽는다. 그저 어머니라고 말해버리고 싶다. 곤고한 삶을 살아온 이 땅 모든 목숨의 배경이 된 여자.

‘어둠에 발효된 빛’이라는 말에 주목하다보면 우리는 곧 그녀의 살아온 생을 재조명하게 된다. 그럴 수만 있다면 가슴 한복판을 헤집어보라. 분명 썩고 문드러지고 애태우다 못해 남루해진 심장 한 조각 있지 않을까. 달려온 여정 속에서 발효한 빛들이 비로소 내가 될 수 있도록 우리가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인류를 숙성시켜 왔던 것이다./천융희 ·시와경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