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보기
김성영(시조시인·고금논설학원 원장)
2016-11-28 경남일보
45년 전 가난한 농가의 초등학교 6학년이던 3월 초순 어느 날, 나는 마루에 준비돼 있는 초라한 도시락을 외면한 채 집을 빠져나왔다. 도망치듯 마을을 벗어나는데 뒤쪽에서 매서운 북풍을 뚫고 귓전에 와 닿는, 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 뒤돌아서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의 숨찬 호흡이 쓰러지듯 나의 폐부를 향해 달려왔다. 도시락을 받아든 나는 매서운 북풍을 안고 울면서 학교로 갔다. 그때 어머니 목소리를 끝까지 배반하지 않고 뒤돌아본 것은 얼마나 다행이었던가.
어머니께서는 올 초봄에 췌장암 진단을 받고 한여름에 딴 세상으로 거처를 옮기셨다. 시시각각 이별이 다가오던 초여름 어느 날 썼던 미발표 시조 한 수를 어머니께 바친다.
‘드디어 때가 왔네/그녀, 강을 건너려 하네/천 겁 하늘이 맺어준 운명의 첫사랑이/안고 온 숙명이라며 이별을 받으라 하네//혹한 혹서 평생 입고 일편단심 꽃씨를 심던/그녀 가슴에 발 묻은 못, 목을 놓을까 두려워서/남몰래 벙어리뻐꾸기 미리 조금씩 늘키고 있네//시간의 모래 흘러가는 강의 저쪽 언덕에/그림처럼 꿈처럼 운두준이 펼쳐지면/나 거기 적묵 담채로 깃들 날 언제 올까//나보다 먼저 그녀 사랑한 강 저쪽의 그리움이/췌장 깊이 사무쳐 내 질투도 속절없이/내 눈물 어루만지고/야윈 그녀, 돌아서네 <‘강가에서’ 전문>’
뒤돌아보기는 단순한 과거 집착이 아니라 소중한 것을 소중히 여기는 일이다. 순수한 초심과 근본, 풋풋한 사랑, 느림의 즐거움, 뒤처진 이와 부축하는 이, 희생하고 소멸한 것들의 흔적… 잊고 싶은 것도 앞만 보며 외면하기보다는 뒤돌아보고 화해하거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모두 자기 삶의 역사요 정체성이므로.
김성영(시조시인·고금논설학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