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7 (293)

2016-11-29     경남일보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7 (293)

비스듬히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돌아선 오빠가 양지를 보고 말했다.

“여기 단감이 기막히게 맛있는데 가을에 안 올래?”

예기치 않던 초대여서 양지는 얼른 대답을 못했다.

“우리 외로운 사람들끼리 자주 연락이라도 하고 살아야지.”

그러나 양지는 선뜻 그러마는 답을 하지 못하고 망설인다. 이제 나의 앞날은 어떻게 열려 갈 것인가. 다시 어디다 목표를 두고 나아가야 할지.

과수원의 막바지가 되는 골짜기에 향나무 몇 그루를 거느리고 농막은 자리 잡고 있었다. 묵혀 두었다는 것은 말 뿐으로 얼마 전까지도 거처한 흔적을 느끼게 바퀴가 휘어진 자전거며 흙이 말라붙은 괭이와 자루 부러진 삽이며 싸릿대로 엮은 바소쿠리 같은 것들이 여기 저기 정리란 형식대로 늘어 놓여 있었고 무엇에 소용되었을 지모를 빈 분유깡통 두어 개도 그 옆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마당에서 이곳저곳의 전망을 둘러보고 있는 양지의 눈에 집 뒤로 이어져 있는 작은 물길이 눈에 띄었다. 식수만 용이하다면 살기 괜찮겠다는 느낌에 환희의 부호라도 던지듯 둥글게 사려 놓은 긴 호스와 농약 살포용인 듯한 고동색 커다란 물통과 지하수 펌프가 눈에 들어왔다.

“어때 살기 괜찮겠지?”

“예. 공기도 좋고 한적하고, 꽃 피고 열매 열면 부자가 따로 없겠어요.”

“동생도 마음에 있으면 한 칸 내줄까?”

후후후…. 농담 같은 오빠의 말에 양지도 익살스러운 웃음을 머금었다.

“식구는 몇이나 되는 사람인데요?”

“가족들한테 외면 받은 남잔데 어린애가 하나 있어”

늘어뜨려진 전선을 주워 나뭇가지에다 걸며 오빠는 별스럽지 않은 듯한 음성으로 답을 했다. 가족들한테 왜 외면을 당했는지, 양지는 그만 궁금증의 깊이를 줄이기로 하고 본론으로 화제를 돌렸다.

“제가 도울 건 뭔데요?”

양수기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던 오빠는 아참 그렇지 하는 듯이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안으로 들어가지.”

살고 있던 자신의 방에 들어가는 사람처럼 익숙하게 문을 열고 들어간 오빠는 우선 어둠침침한 방의 전깃불부터 켰다. 생각보다 방은 넓었고 바깥의 외양에 비해 꽤나 깔끔하게 정리정돈 되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아직 사람이 들지 않은 것으로 여겼던 방에 온기가 있고 아랫목에는 이불이 깔려 있었다. 도대체 무슨 도움이 필요한지 궁금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자, 앉지.”

이불 밑으로 발을 밀어 넣던 오빠가 발끝에 걸리는 무언가를 집어냈다. 젖먹이용 공갈젖꼭지였다. 순간 양지는 멈칫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