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내 없는, 꺼지지 않는 불

김귀현기자

2016-12-27     김귀현
요즘 광장에는 탄내가 부쩍 줄었다. 얼마 전만 해도 초를 든 사람들은 무언가를 꼭 태워 먹기 일쑤였다. 불을 옮겨 주다가 종이컵을 태우는가 하면 초 끄트머리만 쥐고 있다가 머리카락이나 옷을 태워 먹는 일이 예사로웠다.

그래서일까. 모 국회의원은 “촛불은 촛불일 뿐이지, 바람이 불면 다 꺼진다”고 했다. 하지만 광장의 불빛은 전보다 더 훤하다. 지난달 등장한 LED 촛불은 꺼질 줄 모르더니 어느새 대세다.

몇 주 전에는 집 앞에서, 지난 주말에는 서울시청 광장부터 광화문 광장을 가로지르며 시민들의 촛불 행렬을 봤다. 클래식은 여전했으나 트렌드는 입이 벌어질 정도였다. 다양한 색과 형태는 기본, 머리띠나 미니 촛불도 있었다. 또 ‘꾼’(혹은 ‘꿘’)들의 엄중한 시위 대신 축제 같았다.

“촛불은 우리가 ‘집단적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순간이에요. 다들 축제에 오듯 모이잖아요.” 이달 초 진주를 찾은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의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강연 말미 한 교수는 역사가 나긋나긋하게 바뀌어 주지 않는다고 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경남에만 3000명, 전국 70만 명이 모였다. 나긋나긋해 보였지만 결코 나긋나긋하지 않은 움직임이다.

연휴도 반납한 그 고집스러움은 훗날 역사의 한 페이지일 것이다. 시민들은 입을 모아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고 했다.

한 발 떨어져서 본 촛불의 뜻은 무겁고 아득했다. 시민들은 한데 앉아 고생할 날이 줄기만을 고대할 뿐이다. 꺼지지 않는 불은 꺼뜨릴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