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봄날이다
정삼조 (시인)

2017-02-13     경남일보
입춘이 지나 우수가 다 되어가니 봄이 오기는 왔는가 보다. 그렇다 해도 날씨는 아직 춥고 세상은 혼돈에 빠져 있으니 어떤 사람들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시구로 어수선한 마음을 대신 나타내기도 하는 모양이다.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는 뜻을 가진 이 시구는 당나라 때 동방규라는 시인이 왕소군이라는 미인의 심정을 대변하여 쓴 시의 한 부분이라는데 어떤 때에 이르렀는데도 그때에 기대한 바가 미진한 상황을 뜻하는 말로 곧잘 쓰인다.

그래도 봄은 봄이다. 아직 날씨가 다 풀리지 않았더라도 세상에는 봄기운이 완연하다. 나무들은 싹 틔울 준비를 벌써 끝냈고 성미 급한 어떤 매화는 벌써 꽃을 피웠다. 아이가 어머니 뱃속에 들어선 때부터 나이를 세기 시작하여 태어나면 한 살이고 설을 맞아 새봄을 맞으면 한 살을 더 먹는 우리 조상들의 슬기가 새삼 새롭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으니 입춘대길(立春大吉), 바야흐로 축하할 일을 꿈꾸는 것이 즐거울 법도 하다.

십여 년 전에 어떤 문학지에서 문인 100여 명에게 가장 좋아하는 노랫말을 고르라 했더니 가장 많이 선택된 노래가 손로원 작사, 백설희 노래의 ‘봄날은 간다’였다고 한다. 1953년 전쟁의 막바지에 나온 이 노래는 이루어지지 않은 수많은 소망과 거기서 생겨나는 안타까움을 함축적으로 나타낸 노래로 알려져 있다. 봄을 보내고 또 봄을 맞아도 세상에는 미련 남은 일이 더 많아지기 마련일 것이니 그 미련 남은 사람에게는 해를 거듭할수록 이 노래의 첫머리 ‘연분홍치마’가 새삼 그리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름다운 때가 거듭 지나가고, 소망했던 일이 멀어져갈 때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사람들은 스스로를 위로했으리라.

하지만 해를 거듭하여 그 좋은 날, 봄날을 보내고 나면 올해보다는 그 앞의 봄날이 더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아닐까도 싶다. 나이를 더하면 할수록 몸은 낡아가는 것이고, 세월 속에는 지난날의 아름다운 일들이 녹아 있기 마련이니 막상 그때는 ‘봄 같지 않다’고 생각했으나 지금 와 생각하면 옛날 그때가 ‘봄날’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훗날을 생각해 본다면 지금이 바로 그 ‘봄날’이다. 건양다경(建陽多慶), 따뜻한 봄볕 아래 많은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음직하지 않은가.

정삼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