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2월17일(1면) 조병옥 박사 서거

2017-02-20     김지원 기자

1960년은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로 몹시 혼란스러웠던 해였다. 

그 해 3월15일 직접 투표로 실시된 선거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당선됐으나 3·15부정선거로 촉발된 4·19 혁명으로 하야하는 사태를 빚은 후 같은 해 8월 제4대 대통령선거를 다시 치뤘다. 국회 민의원과 참의원의 간선으로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는 윤보선이 당선되었으나 그의 임기도 녹록치 않았다. 

1960년 2월의 경남일보에서 우리는 그 해 비극적 대통령 선거의 서막을 접할 수 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등록했던 조병옥 박사의 서거 소식이 2월17일 발로 도민들의 아침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 해 1월 말 미 육군병원에 치료 차 입원했던 조 박사는 개복수술 후 회복 중에 심장마비로 2월15일 밤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만다. 

조병옥 박사는 미국에서 ‘조선의 토지제도’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25년 귀국한 조 박사는 연희전문학교 교수를 지내면서 독립운동에도 기여했다. 조선일보 경영에 참가하거나 광산회사를 운영한 경력도 있다. 광복 후 정치에 참여해 미군정기 경찰력을 장악해 이승만의 정치활동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내무장관을 역임하던 1951년 5월 거창 민간인 학살사건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이후 민주당 결성에 참여해 최고위원으로 추대되고 구파의 리더로 활동하며 대통령 후보자로 선출됐으나 선거를 한달여 남기고 급서한 것이었다.

외신을 통해 들어온 대통령 후보의 갑작스런 사망소식과 관련 정계뉴스로 1면을 꾸린 경남일보는 이어진 2면에서 조 박사의 사망을 애도하는 정계와 시민들의 분위기를 담아냈다. 

별안간 대통령 후보를 잃은 민주당은 대통령선거 연기를 요청했으나 행정부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조병옥 박사의 장례는 2월25일 국민장으로 치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