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0 (341)

2017-01-17     경남일보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0 (341)

“그건 걱정 안 해도 된다. 내가 그만 준비도 없이 그런 말 했겠나. 걱정 마. 보여줄게.”

외출할 때 굳이 챙겨서 메고 나갔던 가방을 추여사가 다시 꺼냈다.

자신감 넘치는 음성과 함께 추여사가 열어 보인 옷가방 속에는 많은 패물과 현금이 들어있었다. 양지는 점점 낭패한 심정으로 추여사의 거동을 살폈다. 패물 속에는 강사장이 자랑하며 끼고 다녔던, 주인을 호위하듯이 작은 다이아가 큰 다이아를 에워싸고 있던 세공이 뛰어난 비싼 보석반지도 섞여 있었다. 그 뿐 아니라 강사장과 추여사 자신의 이름으로 된 통장과 등기 문서도 있었다. 추여사를 찾는 것만으로도 이유 모를 적의를 드러내 보이던 강사장네 전화 속 여자의 불친절을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추여사님.

양지는 여사의 손동작을 제지시키며 꼿꼿하게 맞바라보고 말했다.

”추여사님, 전 정말 추여사님이 이런 분이실 줄 몰랐어요. 이런 물건을 가지고 하필 왜 저를 찾아오셨어요. 제가 그런 하찮은 인간으로 보였어요?“

”아니야, 절대 아니야. 나는 양지가 어떤 대접을 받고 회사를 그만 두었는지 잘 알아.“

”아녜요. 그건 오해예요. 어머니 일 때문에, 그리고 전 퇴직금도 받았고 절차 밟아서 제 마음대로 제 형편 따라 퇴사를 한 거예요.“

”틀렸어. 아무리 최 실장이야 그렇다지만 강 사장 제가 그러면 안 되는 거야. 누가 키운 회산데, 절반이라도 뚝 잘라 줘야했어.“

자신의 역량과 기여도를 그토록 중히 여겨주는 것이 싫지는 않았지만 추여사는 모든 것을 지금 자기 식으로 생각하고 있다. 뜻 안 한 곳에서 이런 이상한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니. 예사롭지 않은 일이었다. 비록 전화로나마 강사장은 공적인 예우는 소홀하지 않게 처리해 주었다. 같이 오래 일하고 싶었다며 아쉬움도 보여주었는데 추여사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어서 곤란할 소지는 충분했다.

전날의 호의로 어물어물하고 있는 사이에 공범으로 몰릴 수도 있다. 양지는 정색을 하고 추여사를 쏘아보았다.

”저는 추여사님에 대해 제가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구나 하는 것을 지금 절실히 느끼고 있는데요. 한마디로 너무 당혹스러워요. 이런 물건을 들고 어째서 저를 찾아오실 생각을 하셨는지도 아주 불쾌합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하고 같이 살고 싶어. 최실장, 나랑 같이 산다고 말해 줘. 강사장이 나더러 뭐랬는지 알아? 저는 저대로 제 길 갈 테니까 나더러도 내 갈 길을 가라는 거야. 내가 저 말고 갈 데가 어딨어서.“

양지는 언젠가 추여사와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했던 말을 생각했다. 좋은 남자 분 찾아 결혼을 하시면 멋지게 사실 건데요. 여사님은 여성적인 매력도 충분하시고 살림 잘하시는 것 외에 다른 장점도 많잖아요.

그때 추여사는 턱없이 높은 소리를 내며 웃기만 했다. 강사장을 짝사랑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