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0 (350)

2017-01-17     경남일보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0 (350)

양지는 새삼스럽게 추여사의 존재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강사장은 채찍을 맞은 팽이처럼 더 기승해져서 이번에는 아주 영정도 없이 썰렁한 제단 아래까지 부르르 기어가서 앙바라지해 쳐다보며 마치 살아있는 추여사를 겨냥한 듯 삿대질을 했다.

“네가 뭔데, 네가 뭔데 날 이 꼴로 만들어엉!”

분명히 강 사장도 가해자는 아니었다. 사장이 어떻게 나오건 그것은 두 사람 사이에 오랜 세월을 두고 쌓여있던 정한일 수도 있었다. 뒤에서 바라보고 있으려니 늙은 티가 완연한 강 사장의 뒷모습에서도 알 수 없는 연민이 느껴졌다. 양지는 강 사장의 어깨를 두 손으로 감쌌다.

“이러시면 몸 버려요. 이제 좀 쉬셔야돼요.”

순간 양지는 감당할 수 없이 뒤로 쏟아진 강사장의 무게를 안고 뒤로 벌렁 주저앉았다. 열기가 뜨겁게 느껴지는 얼굴을 양지의 가슴에서 떼어낸 강사장이 벌겋게 열기 어린 눈으로 양지를 쏘아보며 손가락질을 했다.

“최양지 너도 그랬어 인마. 난. 갈수록, 아니, 아니 저 여자가 널 밀 때마다 뒤로 물러섰어. 너도 알잖아 내가 어떤 며느릿감을 원했는지. 자식에 관한한 어미는 절대권자야. 내가 그 자식을 어떻게 길렀는데 내 대를 이을 며느리 하나 내 손으로 못 골라? 지 까짓게 왜 남의 상에 감 놔라 배 놔라 간섭이냔 말이야. 최양지가 참 대단하긴 했던 모양이야. 글쎄 여기가 어딘데 지가 여기까지 날 불러 내려서 뒤통수를 쳐. 내가 무슨 그런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나쁜 년, 못된 녀언!”

강사장의 넋두리를 듣고 있는 동안 지병으로 쓰러지던 병훈의 모습이 떠올랐고 엄마들의 자기 자식에 대한 편애란 대책 없는 병증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소리치던 강 사장의 음성이 들리지 않아 돌아보니 취기에 못이긴 채 널브러진 자세로 제단 앞에 쓰러져 있었다. 그를 부축해 일으키려는 호남을 물리쳤다. 어차피 절할 자리를 비켜 주어야할 문상객도 없다. 양지는 강사장이 깊은 잠을 잘 수 있도록 큰 윗도리를 이불삼아 덮어주었다. 그러나 몸을 뒤챈 서슬로 맨몸이 된 강사장은 대자로 뻗어 편한 자세를 취하더니 이내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기 시작했다.

양지는 참 현실감 없는 영안실을 지키며 추여사를 위해 자신이 해야 할 마지막 감사의 표시라는 심정으로 강사장이 깨어나면 할 말을 생각했다.

“추 여사님 고향이 어디시랬죠?”



차에서 내린 양지는 마른 잔디 사이에 파릇파릇 냉이가 돋아있는 방천 둑을 걸었다. 오른손에 들린 보퉁이가 쳐져내리자 왼손으로 옮겨들며 어깨를 추슬렀다. 냇가로 내려가는 길은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얼었다 녹은 흙과 자갈이 낮게 무너진 곳이 없지 않았으나 그녀는 손에 들린 사각의 보퉁이를 의식하며 안전한 길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