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훈의 말숲산책] 이중 피동 ‘잊혀진’

2017-02-22     허훈
“전태일은 독재정부에 의해 민중들에게 잊혀졌다.” 규범문법에서 ‘잊다’의 피동형은 ‘잊히다’이다. ‘잊혀지다’는 피동의 뜻을 나타내는 ‘-히-’와 ‘(-어)지다’가 겹친 표현이다. 이는 ‘잊히다, 잊히는’과 같이 쓰는 것이 적절하다. 따라서 이중 피동 표현을 피하려면 “전태일은 민중들에게 잊혔다.”, “전태일은 독재정부에 의해 민중들에게 잊어졌다.”로 써야 한다. “오래전에 ‘잊혀진’ 일들을 다시 얘기할 필요는 없다.”에서 ‘잊혀진’이 이중 피동이므로 ‘잊힌’으로 하는 게 알맞은 표현이다.

이처럼 피동법은 ‘아기가 엄마에게 안기다.’와 같이 피동사에 의한 것과 ‘새로운 사실이 김 박사에 의해 밝혀졌다.’와 같이 ‘-아/어지다’에 의한 것이 있다. 그런데 피동법이 이중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이중 피동 표현’이라 한다. 한 용언에 피동 접미사(이·히·리·기)와 ‘-어지다’가 모두 붙는 것으로 적절치 못한 표현이다. 예를 들어 “정말 믿겨지지가 않아”에서 ‘믿겨지지가’는 ‘믿다’에 피동 접미사 ‘-기-’와 ‘-어지다’가 함께 쓰인 이중 표현이다.

즉 피동 접미사 ‘-기-’만 사용하여 ‘믿기지가’라고 표현해도 될 것을, 여기에다 또 피동의 뜻을 나타내는 ‘-어지다’를 넣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피동의 뜻을 나타내는 말에 피동의 뜻을 또 더할 필요는 없다는, 즉 간결하게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에서 이중 피동 표현을 지양하는 것이다. 덧붙여 ‘불리다(‘부르다’의 피동사)’의 의미로 ‘불리우다’를 쓰는 경우가 있는데, 표준어는 ‘불리다’이다.

허훈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