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55)

2017-03-13     경남일보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55)

“심려랄 기 뭐있나. 우리도 놀래긴 엄청 놀랬제. 그렇지만 그런 숭악한 일로 당한 상촌 띠기 딸내미는 우떻것노, 그래삿코 있는 중이건만. 늙은이들 모여 앉으모 그런 이바기 말고 별거 있나. 그래 웬 일로? 안으로 좀 들어오지. 오늘은 바람 끝이 많이 맵네.”

“괜찮습니더. 이거 별거 아니지만-.”

“이기 뭐꼬?”

양지가 내미는 비닐꾸러미를 받을 듯 말 듯 미적거리며 노인네가 의구심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 사이에 눈치를 보고 있던 노인네들 중 입빨라 보이는 좁장한 얼굴이 재빨리 토를 달았다.

“아, 할마시도 척 보모 알제 뭐긴 뭐라. 경우 바른 젊은이가 떨어져도 하나 안 아깝은 간 떨어진 거 다부 이까 붙이라꼬 뭘 사갖고 왔건만. 아, 엊그제 험한 꼴 뵈어서 간 떨어졌을까봐 인사 안 왔나. 꿀찜하던 참에 잘됐다. 무을 기모 얼른 갖고 와서 안 끌러보고 뭐하노.”

그제야 양지는 여럿이 있는 장소에서 곧 먹을 수 있는 것을 준비 못한 점을 후회했다. 왠지 그 잘못을 인정하고 싶은 선선한 손길로 선뜻 지갑을 꺼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그걸 미처 생각지 못했어요. 이건 고기니까 볶아 드시고, 이걸로는 얼른 좋아하시는 군입거리라도 사다 드시이소.”

양지는 지갑에서 꺼낸 만 원짜리 두 장을 주인 노파에게로 내밀었다. 그러자 안에서 또 농담으로 해본 소린데 그럴 것까지 없다는 사양의 말과 입이 심심하던 참인데 잘됐다, 고맙다 등의 인사말이 두서없이 모여 나왔다. 그런 사이에 양지를 만나자 꼭 해주고 싶었던 말인 듯이 양지어머니의 생애에 대한 후일담 한마디씩을 들려주었다.

“참말로 조선 천지에 드문 열녀 제. 상촌양반 여름 모시 옷 진솔 빠다리서 환하게 입혀 내놓는 거 보고 우리 모두 혀를 내둘렀다 아이가.”

“철철이 의장수발만 그랬더나. 어정잽이 냄편이라 홀대 한 번 안했고, 각다분한 살림살이 불평 한마디 없이 평생 장 반찬 없는 밥상 안 올ㅤㄹㅣㅆ다꼬 이 집 저 집 영감들한테 우리들 욕먹은 거는 우짜고.”

“하모, 하모. 조신한 성격에 예법은 또 얼매나 깍듯했는데.”

“본데 있고 든데 있고 가근방에서 모두 안 이까리는 사람 없는 걸로 솔직히 말해서 우리들 모두한테 눈총도 더러 받았제.”

“체수는 쪼맨해도 그 속에 한 바다를 품었다캤제.”

“에나 진짜배기로 아깝은 사람인데, 복은 와 그리 함안읍내 문철네 복이던고. 우리 모두 하도 안타깝아서 너그 어매 소리 해놓고 아깝은 사람 놓쳤다꼬 쌓던 중이다.”

“강 고집 최 뿔따구라꼬 뻗대는 기질도 좀 안 있었겄나.”

“말 그리 개겁게 하지마라. 그게 어디 고집만으로 되는 일이가. 아무리 강상에 법무한 세상이라 캐도 자기 자리는 엄중하게 지켜 낸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