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56)

2017-03-13     경남일보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1 (356)

“우쨌든 참 요조숙녀였제.”

아, 맞다. 자식인 양지는 한 번도 그런 객관적인 생각을 해본 적 없는 평가지만 모두 맞는 말이다. 큰 산 아래서 자란 사람은 막상 자기 집 뒷산의 위용을 못 느끼듯이 양지 역시 남들이 다 아는 어머니의 장점 하나 고이 느끼고 받들지 못했다. 아픈 양심으로 또 한 번 아, 어머니를 뇌일 뿐이다.

“그런 어매 밑에서 보고 배운 딸들이 비믄하게 잘 살면서 저 어매 한풀이 안하겠나.”

돌고 있는 소문 때문인지 양지가 못 듣게 작은 소리로 말해놓고 옆 사람을 집적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어매 밑에서 보고 배운 것. 그런 어머니의 딸답게 잘 사는 것은 어떤 모습인가. 이때 문득 고종오빠가 장학 사업이나 숨은 선행을 하면서 자신의 생활신조로 삼는다던 말이 연결되어 떠올랐다.

‘내 생에 보이는 모든 언행은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해준 은혜를 갚는 것이다’

“좋은 말씀들 해주시서 정말 감사합니더. 그런 말씀을 명심해서 살도록 하겠십니더.”

양지는 고마운 마음이 실린 정중한 인사로 깊이 허리를 숙였다. 이제 돌아서야 될 차롄데 막상 찾아온 정자어머니의 모습은 내내 눈에 띄지 않았다.

“혹시 정자어머니는 여기 안 오셨어예? 집에 안계시던데.”

“그 할망구 어데 갔어.”

“그래예?”

“울고 싶자 꼭지 친다꼬, 본인이 거처하는 방에서 생전 모르는 사람이 그리 죽었는디 송신해서 우찌 삐댈끼고. 그 날부터 주욱 우리 집에서 안 잤나.”

“송구스런 부탁이지만, 오시면 제가 인사 왔더라고 전해 주시고 이것도 좀 전해 주시면 안 될까예?”

손에 남은 꾸러미를 들어 보이며 양지가 부탁하자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낭패스러운 듯 집주인 노파가 그랬다.

“아이갸 그 할망구 길래 안돌아 올거로.”

왜냐는 물음이 실린 양지의 얼굴을 바라보며 노파가 한숨을 먼저 앞세웠다.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방안에서 다시 또 누군가가 껴들었다.

“서방 복 없는 여편네는 자슥 덕도 없다카던 말 하나도 거짓말 아니제.”

“니도 참 새삼시럽다. 옛 말 그른데 있더나.”

“오질 없는 여편네가 것도 자슥집이라꼬 정자한테 또 갔나?”

“인자는 그게 안 갔다. 젊은 것들은 늙으모 속도 없는 줄 알지만 좀해서 안 풀릴 기다. 저그로 우떠키 키았는데 저거가 늙은 어매 맘을 그리 상하게 맹글어.”

그것은 비단 정자어멈에 국한된 노여움만이 아니라 방안에 모여 앉은 모든 어머니들의 내심이 깃든 입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