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단] 나무경전(김일태)

2017-03-26     경남일보
[경일시단] 나무경전(김일태)
 
 
나무가 수행자처럼 길을 가지 않는 것은
제 스스로가 수많은 길이기 때문이다

 
나무가 날지 않아도 하늘의 일을 아는 것은
제 안에 날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가 입을 다물고 있다고 침묵한다 말 하지마라
묵언으로 통하는 나무의 소리가 있다

나무가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고 말하지 마라
제 몸으로 모든 것을 기록하는 나무의 문자가 있다

그러한 이유로 나무에게 함부로 말하지 마라
가지지 않았기에 나무는 경계 없이 우거져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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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루의 나무의 생을 관찰하다 보면 사람 사는 거와 진배없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움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고 모진 풍설을 견디며 살아가는 것이 그러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상황을 유추하고 헤아릴 수 있는 나이쯤 되면 무언으로도 의사표시를 할 수 있는 경지가 있다. 경계는 함부로 드나드는 곳이 아니다. 다만 그 울타리를 낮추고 살 뿐이다.
 
주강홍 (진주예총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