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허리

2017-03-29     경남일보
 



[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허리


바다에서

바다로 갑니다.

밥 끌고

집으로 갑니다.

허리 숙여야 살 수 있습니다.



-이용철



어머니의 허리는 저리 굽어도 괜찮은 줄 알았습니다. 심지어 바다가 열리는 물때에 맞춰 밥 벌러 나가는 꺾인 허리를 ‘참 정겹다’며 바라본 적도 있습니다. 비척거리며 집으로 오는 어머니의 걸음 뒤로 미역이며 소라, 전복의 무게에 항상 먼저 눈대중한 것 같습니다. 멍든 삶의 궤적을 당연시하고 말입니다.

곧 벚꽃 휘날리는 4월이 다가옵니다. 바다와 어머니는 어떤 관계였을까요. 집이었고 밥이었고 전부였습니다. 그러니 바다가 흘린 눈물은 죄다 어머니가 삼키고, 허리 숙인 채 남 몰래 흘린 어머니의 눈물은 바다가 울컥울컥 삼켰겠습니다. 천일 동안 물밑에서 허우적거렸던 우리의 어머니가 남은 우리의 아이들을 기어이 데리고 나오리라 봅니다. 다 타버린 심장 때문에 허리는 끝내 펴지질 않겠지요. 우리의 아이들, 참으로 기나긴 수학여행 중입니다./ 천융희 ·시와경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