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훈의 말숲산책] ‘절체절명’의 순간

2017-03-22     허훈
“작가는 당시 유방암 수술이라는 ‘절대절명’의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절망을 안고 있었다./토끼도 ‘절대절명’의 위급 상황이 되면 캭캭 같은 이상한 소리를 낸다./지금 우리는 죽느냐 사느냐 하는 ‘절대절명’의 위기에 놓여 있다./체제 유지라는 ‘절대절명’의 과제가 그들의 눈앞에 놓여 있다.” 4건의 예문에서 ‘절대절명’은 틀린 말이다. 표준어는 ‘절체절명’이다. ‘절대절명’은 한자 사자성어인 ‘절체절명’을 잘못 적은 것이다.

‘절체절명(絶體絶命)’은 ‘몸도 목숨도 다 되었다는 뜻으로, 어찌할 수 없는 절박한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즉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이나 궁지’를 일컬을 때 ‘절체절명’이라 표현한다. ‘절체절명의 순간, 절체절명의 위기’처럼 쓰인다. 이 같은 의미를 표현할 때 ‘절대절명’으로 잘못 쓰는 경우가 더러 있다. 말할 때도 마찬가지다. ‘절대절명’은 ‘절체절명’의 비표준어이다. ‘체’를 ‘대’로 발음하는 것은 일본 한자 읽기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언어생활에서 왜말 부스러기는 말끔히 추방해야 할 찌꺼기이다.

신문기사 오용사례 몇 개를 든다. “7회 말 무사 3루의 위기에서 4, 5, 6번 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팀을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구해냈다./하지만 ‘절대절명’의 순간처럼 보이는 사진들이지만 실제 상황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을 올린 네티즌들이 극적인 재미를 위해 컴퓨터로 합성해 현실감 있는 사진을 만들었다.”(→절체절명) 이젠 ‘절대절명’이란 낱말을 머릿속에서 싹 지워 버리자. 절체절명의 심정으로.

허훈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