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훈의 말숲산책]'그리고’와 ‘그러고’

2017-03-29     허훈
“나는 쌀을 씻었다. (그리고는/그러고는) 밥솥에 안쳤다.” 앞 문장에서 ‘그리고는’이 맞을까, ‘그러고는’이 맞을까. 참 알쏭달쏭하다. 그 쓰임새를 살펴보자. ‘그리고’는 접속부사로 단어, 구, 절, 문장 따위를 병렬적으로 연결할 때 사용한다. “너 ‘그리고’ 나/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창문을 열었다.”와 같이 쓴다. 이처럼 ‘그리고’는 단 하나로 쓰이기 때문에 ‘그리고는’처럼 보조사를 결합한 행태로는 쓸 수가 없다.

동사인 ‘그러다’는 ‘그리하다’의 준말로 ‘그렇게 하다’의 뜻이다. ‘그러다’는 ‘그래, 그러니’ 등으로 활용한다. “당신 혼자 결정하다니, ‘그러는’ 법이 어디 있어요?/자신이 말을 못 한다는 것 때문에 그녀는 더욱 열심히 문자에 매달리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황제와 필담을 할 수 있을 만큼 높은 교양을 습득할 수 있었다.”와 같이 쓴다. ‘그리고’는 접속부사이고, ‘그러다’는 동사로 활용한다. 따라서 ‘그리고’를 사용할 때 주의할 점은 단독으로 쓰인다는 것이다.

“밥을 먹었다. ‘그러고 나서’ 이를 닦았다.”를 흔히 “밥을 먹었다. ‘그리고 나서’ 이를 닦았다.”라고 쓰는 것은 옳지 않다. ‘-고 나서’ 앞에는 동사만이 오기 때문에 동사가 아닌 ‘그리고’는 올 수 없다. “나는 쌀을 씻었다. (그리고는/그러고는) 밥솥에 안쳤다.”의 문장에서도 ‘그러다’의 ‘그러-’에 앞뒤 절의 두 사실 간과 계기적인 관계가 있음을 나타내는 ‘-고’, 강조의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 ‘는’을 결합해 ‘그러고는’으로 표현하는 것이 맞다.

허훈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