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4·19, 의거에서 혁명이 되기까지

2017-04-19     박현영 기자

 

“죽은 학생 책임지고 리대통령 물러가라. 우리는 민주 정의 위해 싸운다”
1960년 4월 19일 독재정권에 굴복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되찾고자 일어난 학생·시민 중심의 항의 시위인 4·19혁명이 57주년을 맞았다.
4·19 혁명은 종신 집권을 노린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의 3·15 부정선거에 반발해 전국 각지에서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당시 마산 시위에서 실종된 김주열 군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것이 촉매가 돼 전국으로 번진 반독재 민주주의 운동이다.
역사적 사건의 성격을 규정하기 위해서는 그 사건을 평가할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4·19혁명은 1960년 당시 ‘4월 혁명’으로 불렸으나 1961년 5월 16일 군사정변 이후 중·고등학교 교과서 등에 ‘의거’로 기록됐다. 1960년대 말에는 역사적 판단이 정립되지 못해 4.19로 불리다 이후 약 30년간 4월 민주항쟁, 4월 민중항쟁, 4·19운동, 4·19혁명으로 학문·사회적 차원에서 의미를 두고 논쟁이 있었다. 문민정부 들어 ‘역사바로세우기’ 정책을 통해 1993년 4월 19일 ‘4·19 혁명’으로 공식 기록되기 시작했다. 57년전 부터 최근까지 여전히 용어 사용의 갈등은 있지만 민주주의를 위해 용기 내 희생한 이들을 기억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