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맨발로 가볍게

2017-04-20     경남일보


맨발로 가볍게

벌과 나비는 맨발로 가볍게

이 꽃 저 꽃 옮겨 다녀요 꽃이 다칠까 봐

신발 신지 않고서

-박해경



사월이 온통 초록 속으로 스미는 중이다. 피었다 져버린 꽃들의 이름 뒤, 사방이 연이어 봄의 향연으로 찬란하기 그지없다. 텃밭에 잠시 머문 노랑나비, 배추흰나비에 주목하다 보니 일본의 하이쿠가 떠오른다. ‘꽃잎 하나가 떨어지네 어, 다시 올라가네 나비였네!’ 마음이 맑은 사람의 눈에는 접었다 폈다 유유히 흐르는 나비가 꽃잎으로 착각되다가 때론 ‘꽃잎에 붙인 우표’로도 보이는 것이다. 얼마나 섬세했으면 나비의 맨발까지 읽힌단 말인가.

맨발의 이미지는 실로 다양하지만 꽃을 위하여 벗은 맨발이라니 이 봄이 환한 까닭이겠다. 그러니 꽃들은 나비가 떠날 때 기꺼이 꽃가루로 만든 노란 신발 한 켤레씩 선물하는 것 아니겠는가.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천융희·시와경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