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단상] 불운과 불행을 피하기 위해선

<수필가 이석기의 월요단상>

2017-03-27     경남일보
행복이란 불행의 시작에서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한다.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일수록 가난하게 살아간다는 말이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의 처지를 비난하며 자기의 불행을 자기 탓으로 생각지 않고 남의 탓이나 아니면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지 못한 탓으로 돌려 버리기도 한다. 아마도 그것은 자기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남의 탓이나 환경 탓으로 갖다 붙이는 구실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훌륭한 사람들의 어린 시절을 보게 되면, 가난과 불운의 환경 때문에 좋은 환경에서 자란 친구보다 몇 갑절 더 노력하여 자기 불운을 역이용하며 살아가기도 했다. 그들에게는 어린 시절의 불운이 그들 자신을 성장시킨 가장 큰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운명은 언제나 도전하여 극복하라는 것이지 그대로 수용하여 살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행운이나 불운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처한 환경을 자신에게 얼마나 유리하게 이끌어 가는가가 행복과 불행에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고 봐야 한다.

인간의 삶에는 긍정적인 측면만이 유익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부정적인 측면에서도 삶의 질을 높여 주기도 한다. 이를테면 우리 삶에 있어서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드러내어 자신과 타인에게 공헌하도록 개발하자면 어느 정도의 불운과 불행도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아무리 불행할지라도 자신이 지향하는 실제적 대상이 절실하다면 누구나 행동하게 되고 행동하게 되면 반드시 그 기회는 찾아오기 마련이다. 불운과 불행을 얼마나 슬기롭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즐거울 수도 괴로울 수도 있다.

스스로 땀 흘려 일한다면 자신이 애써 노력한 만큼의 결과는 분명 얻게 마련이다. 실현하려고 지향하는 일이 올바른 동기에서 선의의 땀을 흘린다면 모든 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살다보면 남들은 모두 행복하게 사는 듯이 보이고, 자기만은 불운을 타고난 듯 느껴질 때에도 있을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안 좋은 일이 자주 일어나는 것은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불안감과 두려움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육체를 강하게 키워 주기 위해서 값비싼 보약만이 필요하다고는 볼 수 없다. 정신적 건강은 물론 우리 삶의 모든 면에서도 이치가 통할 수 있어야 한다. 역경이나 불행이나 불운으로 이어지는 것도 우리의 삶일 수밖에 없다. 불행도 생각하기에 따라 변할 수 있고, 당하는 이의 태도와 노력에 따라 유익할 수도 있다. 불운과 불행이란 좋은 생각, 좋은 행동을 하지 못한 데서 올 수 있다. 오직 밝고 긍정적인 사고의 습관화가 일상의 불운과 불행을 피해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수필가 이석기의 월요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