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독(多讀)이 다독인 우주

김귀현기자

2017-05-24     김귀현
지난 2월 야심찬 계획을 짰다. 절반은 뼈저리게 느낀 필요였고 절반은 책임감이었다. “책 좀 읽자.”

주말마다 가는 곳은 도서관이었고 취미는 책 붙잡기였건만 입사 이후 뜸해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하루에 읽는 글자의 대부분은 뉴스였고, 뉴스가 아니라면 노트북 화면이나 좁은 휴대전화 액정으로 읽는 것이 전부였다. 그 사이 학생 때 취득했던 한국어능력시험 급수는 유효기간이 끝나버렸다. 이유 모를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2월을 시작하며 일주일에 걸쳐 읽고 싶은 책 목록을 정리했다. 온라인 서점에 주문을 넣고 안심했다. 부끄럽지만 기사를 쓰면서 읽는 책들 덕분에, 매주 출판 기사를 마감하며 금방 잊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얼마 후 모 주간지 기자의 글을 봤다. ‘아무도 읽지않는다는 이유로 장문의 글을 쓰지않다보면 어느 새벽, 당신은 읽는 이가 기다린대도 긴 글을 쓸 수 없게 됐음을 깨닫게 된다. (중략) 당신의 우주는 그런 식으로 비좁아져 간다.’ 잊었던 불안함은 뻥 터지고야 말았다. 이는 직업과 별개로 볼 수 없기도 했지만 ‘내 우주의 소멸’과 직결돼 있었다.

주문한 책 스무 권 중에 열 권, ‘문재인의 운명’ ‘개인주의자 선언’ 등을 아직 읽지 못했다. 그 사이 대선이 있었고 신간 목록과 베스트셀러 순위가 몇 차례나 뒤집어졌다.

요즘 아무데나 앉아서 마치 지금 산듯 밀린 책을 읽는다. 서점과 도서관을 들락인다. 다독(多讀)이 ‘모두의 우주’를 다독이길 바란다. 물론 이전에 비한 다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