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간 일이라고? 폭력은 폭력일 뿐

[시민기자] 목숨 위협하는 데이트 폭력

2017-07-20     경남일보
서울 한복판에서 A씨는 죽음의 문턱을 경험했다. 지난 18일 서울 신당동 약수사거리 인근에서 헤어진 남자친구가 휘두른 무자비한 폭력에 앞니 3개가 빠지고 치아 2개가 부러졌으며 얼굴에는 타박상을 입었다. A씨가 남자친구 손 모씨에게 “다시는 보지 말자”고 말한 다음 벌어진 사건이었다. 살려달라는 A씨의 애원에도 주먹질과 발길질을 동반한 폭력은 계속됐다. 주변 시민들이 A씨를 도와 피신시키자 손 씨는 차량을 끌고 와 A씨와 시민에게 위협을 가하기까지 했다. 손 씨는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내가 왜 문제냐. 얘가 찾아오고 얘가 날 때린 건데. 맞고만 있는 게 죄라는 거냐”며 억울함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5년에 일어난 연인 간 폭력 사건은 2014년에 비해 1,000건 이상 증가한 7,692건이며, 2016년에는 무려 8,367건에 달했다. 매해 1,000건씩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 5년간 일어난 연인 간 폭력사건 중 살인이나 살인미수 혐의가 적용된 사건은 모두 467건에 달한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경찰청은 작년 2월부터 한 달 동안 ‘데이트 폭력 집중 신고 기간’을 실시했다. 그 결과 1,279건이 접수되었고, 가해자 868명이 입건됐으며 61명이 구속됐다.

적발된 연인 간 폭력 사건의 가해자는 20∼30대가 58.3%로 가장 많았으며, 40∼50대가 35.6%로 두 번째를 차지했고, 피해자의 92%는 여성이었다.

연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폭력인 ‘데이트 폭력’사건은 뉴스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헤어지자는 한마디에 주먹을 휘두르고, 죽음에 이르게 하며, 때때로 연인의 가족들까지 피해를 주기도 하지만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이다.

‘데이트 폭력’이라고 하면 상해를 입히는 폭력만 떠올릴 수 있지만, 상대를 감시·통제하거나 협박하고, 폭언과 무시를 일삼거나, 동의하지 않는 성행위, 경제적인 갈취 등 합의 하에 이뤄지지 않는 모든 것들이 이에 해당한다. 사소한 집착에서 시작되어 감시로 이어지다 결국 폭력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대학생 하 모씨는 올해 초 동아리 선배와 교제를 시작했다. 그는 하씨에게 휴대전화 속 남성의 전화번호를 모조리 지울 것을 강요했다. “너를 믿지만 네 주변 남자들을 못 믿는 것”이라는 게 그의 변론이었다. 그만큼 자신을 사랑해주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 하씨는 이에 응했지만, 그의 집착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급기야 업무적인 일로 남성에게 전화가 오자 그는 하씨의 전화기를 집어 던져 파손시키기까지 했다.

하씨의 경우처럼 데이트 폭력 중 초반에 나타나는 정서적인 폭력은 폭력으로 인지하기 쉽지 않다. 일상적인 데다 사랑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연애 관계가 상대를 ‘내 것’이라고 소유하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남성의 경우 여자친구 단속은 ‘여성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정당화되고, 남자다운 것, 낭만적인 것으로 포장되기 일쑤다.

데이트에는 폭력이 없다. 폭력이란 이름으로 된 사랑도 없다. 폭력은 그저 폭력일 뿐, 그 어떤 이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질투가 도를 넘어 설 때, 사랑이란 이름으로 집착이 목을 조여 올 때가 폭력의 신호탄이 울리는 때다.

오진선 시민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