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4 (458)

2017-07-04     경남일보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4 (458)

“내가 오빠, 아니 남성과 가진 첫 접촉에서 그런 위안과 애틋함을 느낀 건 처음이고, 먼 훗날 남녀가 성인이 되면 왜 그렇게 신체 접촉을 당연시하고 즉석 응교도 가능한가를 이해하게 된 계기도 그 때였어. 그 오빠는 빗맞은 매질로 퉁퉁 부어있는 내 손을 물에 담그고 오랫동안 주물러 줬어. 일정 시간이 지나자 부기가 가라앉고 내가 좋아하니까 멍든 종아리나 얼굴 부분으로 범위를 넓혀갔어. 그 뒤부터 우리는 만나면 스스럼없이 아팠던 부위를 드러내놓고 점검해서 화제를 삼으며 일테면 연민으로 싹트는 이성교제 비슷한 정감을 느끼게 됐지. 가랑비에 옷 젖듯이. 이제 와 생각하면.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사랑과 연민. 고독한 사람에게 이보다 위안이 큰 유토피아는 없어. 가련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어루만져 주는 따뜻한 손길에 나는 해파리처럼 부드럽게 변해갔고 오빠의 어디든 접착되고 흡수되어 버리고 싶은 간절함으로 점점 해체되어버리는 걸 느꼈어. 이런 감정은 이성적인 제어로는 도저히 불감당이야. 너도 어릴 때 그런 경험 가져 본 적 있어? 말 안하는 것 보니 없네. 나는 오빠한테 매달렸어. 정신적으로 만이 아니야. 내가 언젠가 말했지. 인간은 모순의 결정체라고. 고상한 척 도도한 척 온갖 결기를 드러내면서 실은 속물적이기 이를 데 없이. 순화 걔 결혼식 때, 첫 아이 돌 때, 유학 가는 날 축하파티 때, 우리 우먼파워들 얼마나 절절한 심정이었니. 얼마나 대단한 결의로 뭉쳤었니. 그런 우리가 말이야. 난 그때 사실 순화가 팍 사라져버리고 내가 대신 주인공이 되고 싶어 미칠 것 같았어. 해 온 깐이 있으니까, 양심은 있어서 자신을 드러낼 용감성이 있어도 비겁하게 감추고 딴전을 피우고. 이 모든 이유가 어디 있느냐. 하긴 그 입장이 되었으면 나 역시 별수 있겠느냐는 자조와 비애어린 결론에 도달하고-. 자, 마시자. 그게 내가 요즘 도달한 지점의 회돌이 동작이었어. 이것이냐, 저것이냐.”

“그 다음 오빠와의 관계는 어떻게 됐어? 어른들 눈치 못 채게 진도 나간 것도 없이?”

비슷한 경험으로 양지가 캐물었다. 정아는 기다렸다는 듯 다시 말을 이었다.

“인간을 죽이는 것도 살리는 것도 다 환경이야. 사랑을 통제하기 위한 제도와 관습, 만약 그런 게 없었다면 나의 심성은 더 감미롭고 아름답게 성숙되어 갔겠지.”

“들켰구나 결국.”

“그래서 우먼파워에서 너랑 만난 거 아냐? 자, 건배. 우리의 운명적인 만남을 위하여!”

“왜 자꾸 딴 길로 새냐. 숨길게 있다는 뜻이지?”

“계집애, 유경험자도 아니면서 예민하게 파고들어. 그래서 순화가 부러웠고 우리 몽골이한테 더 지극했던지 몰라. 왜 이제 됐어?”

“그야 일반론인데 뭐.”

“야, 악질 순사 같다. 나 심문하는 거냐? 그래 불량청소년 딱지를 받도록 갈 데까지 다 가봤다 됐냐? 무섭고 불안해서 모성도 냉큼 잘라내야 했던 끔찍한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