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이홍식(수필가)

2017-08-15     경남일보
대부분 사람에게 직업이라는 것은 생계수단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일은 삶의 가장 근본적인 의미이자 목표이고 자부심과 성취감을 얻는 수단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직업이 있고 그 사람의 하는 일에 따라 그것은 개인의 정체성과도 관련되는 핵심요소다. 최고의 직업은 남들이 줄 서는 분야가 아니라 내가 즐겁고 행복하게 능력을 발현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대부분 사람은 적성에 맞거나 좋아하는 일보다는 생계를 위한 일이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자기에게 맞지 않은 일을 평생 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지만 생계를 꾸리지 못 하는 일도 있다. 더러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생계까지 해결되는 운 좋은 사람도 있다.

만약 물려받은 유산도 없고 직업이 없어 일정한 수입이 없다면 인생의 많은 부분이 막힌 거나 다름없다. 늘 먹고사는 일로 걱정해야 하는 것만큼 구차한 게 또 있을까. 돈이란 어쩌면 육감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없으면 나머지 오감도 도저히 온전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예전과 달리 요즘 세상은 문밖을 나가는 그 시간부터 돈이 있어야 하는 세상이다. 돈이 없이는 어떤 품위도 유지하기 어렵다. 어떤 사람들은 가난이 특별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자극이라 하지만 그것은 가난의 고통을 진정으로 겪지 못한 사람일 것이다. 가난이 사람을 얼마나 천박하게 만드는지 겪어보지 않고는 모른다. 가난하면 뜻대로 살아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생계문제로 이리저리 끌려 다니느라 염치를 잃고 굴종과 복종 속에 살기 쉽다.

좋은 직업과 돈이 풍족한 것은 좋은 일이다. 그래도 가난하게 살다 보면 명확해지는 것들이 있는데, 가난한 사람의 꿈은 소박하고 항상 현실 곁에 있으며 바라는 것이 막연하지 않다는 것이다. 산다는 것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꿈은 삶에 군더더기가 적다. 옛날 가난한 선비들의 청빈한 삶은 갓 길어 올린 우물물처럼 맑고 정갈했다. 허당습쳥(虛堂習聽) 이란 말이 있다. 빈방이나 대청에서 소리를 내면 울려서 다 들린다는 말이다. 뭔가 채워져 있으면 그 자체가 소리를 먹기 때문에 소리가 울리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가진 게 너무 많은 것보다 조금 비어있는 것이 깊은 산 속 메아리와 같은 맑은 울림과 공명(共鳴)이 있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