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단] 마지막 고스톱(이영식)

2017-08-20     경남일보
[경일시단] 마지막 고스톱(이영식)



청홍단 꽃 시절 다 지나가고

어머니 깡마른 손등의 핏줄

저승 문턱에 닿은 듯 가늘고 희미하다

이번 생에 받았던 패는 별게 아니었는지

쥐었던 화투장 줄줄 흘리면서

흑싸리에 홍싸리를 붙여 먹어간다

어머니 손에 든 놈 넘겨다보고

짝 맞춰 내 패를 슬쩍 던져놓으니

옳지, 오늘 참 잘 맞는구나

텅 빈 잇몸 드러내 웃으며 고고-



치매예방에 좋다지요

의사도 눈감아 준 병상에서의 고스톱

비풍초똥팔삼… 던지고 뒤집히고

파도처럼 굽이치던 한 생애가

낙장불입 단풍처럼 시들었다

그날 고고하던 고스톱을 끝으로

어머니는 먼 길 떠나가셨다

유골함 곁에 고이 모신 화투 한 모

48장 굽이굽이 한 여자의 길이

손때 묻은 그림책으로 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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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투는 요행과 기술과 욕심의 결과가 바로 나타나는, 그리고 정이 엉키고 풀어내는 놀이 문화다. 누구의 생각을 염탐하고 결과를 예측하는 일들이 의지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포기할 일도 아니다. 손바닥에 감춘 패처럼 어쩌면 우리 한 생이 화투 한 판인지 모르겠다. (주강홍 진주예총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