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선구자 황철(黃鐵) 전 관찰사
이수기(논설고문)

2017-09-25     경남일보
1908년 6월 11일부터 1909년 10월 23일까지 1년 4개월 간 대한제국의 경남도 마지막 황철(黃鐵) 관찰사(觀察使:도지사)는 우리나라 최초사진작가 3명 중 한 사람이다. 중인이 아닌 양반집안에서 사진의 선구자가 된 그는 궁궐 등을 찍었다가 의금부에서 간첩죄로 체포, 투옥된 일도 있었다.

▶黃 전 관찰사는 현 진주성 북장대 앞의 경남도 관찰사로 역임하다 나라가 일제에 강점당하자 일본인에게 관찰사직을 물러주고 떠났다. 그 후 일제의 벼슬제의에도 마다하고 1911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서화연구소를 운영, 활발한 작품활동을 펴다 1930년 말 67세로 도쿄에서 세상을 떠났다.

▶黃 전 관찰사는 1882년 2월 집안에서 경영하는 신식 광산기계 도입을 위해 중국에 갔다. 또 같은 해 9월 상해를 다시 방문, 중국인 좌소인(左紹仁)으로부터 사진 촬영술을 익히고 독일제 사진 기계를 구입, 일본을 거쳐 그해 말에 귀국했다. 1883년 대안동 사저의 서책 사랑을 개조, 촬영소를 설치하였다.

▶黃 전 관찰사는1896년 개화파 인사들에 체포령이 내려지고 사진기까지 파손, 일본에 망명했다. 1906년 사면령이 내려져 의친왕을 모시고 귀국, 또 사진기를 구입, 촬영소를 만든 집념가다. 그 후 농상공부협판·포천군수·강원도와 경남도 관찰사를 지냈다. 구한말 진주전경 사진이 많은 것은 사진선구자 黃 전 관찰사 영향이 컸다.
 
이수기(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