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 말이 살찐다고 어깨춤 출 수 없는 사정은
민영인(귀농인·중국어강사)

2017-10-01     경남일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 날만 같아라’ 라는 말이 있다. 지금은 오곡백과가 풍성하고 날씨는 청량하여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여기에 딱 들어맞는 말이 바로 천고마비(天高馬肥)다.

이 말의 어원은 ‘한서(漢書)’ 흉노전(匈奴傳)에 나오는 것으로 두보(杜甫)의 할아버지인 두심언(杜審言)이 참군(參軍)으로 북쪽 변방에 가 있는 친구 소미도(蘇味道)에게 보낸 시에 있다.

/雲淨妖星落(운정요성락) 구름은 깨끗하고 요사스런 별도 떨어지니/秋高塞馬肥(추고색마비)가을 하늘은 높고 요새의 말은 살찐다/據鞍雄劍動(거안웅검동)말안장에 기댄 영웅의 칼이 움직이고/搖筆羽書飛(요필우서비) 붓을 갈기니 깃 꽂은 글이 날아간다/

요성(妖星)은 변란이 일어나면 생기는 혜성인데 그것이 사라졌으니 전쟁이 없을 것이라는 예언이며, 우서(羽書)는 전쟁의 승리를 알리거나 격문을 보낼 때 빨리 날아가라는 의미로 닭의 깃을 꽂아 보낸 데서 유래했다니 친구의 개선을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추고마비(秋高馬肥)는 보통 두 가지로 해석을 하는데 하나는 오곡백과가 무르익고 말도 살찌는 좋은 계절을 일컫는 것이고 또 다른 의미는 유비무환이다.

가을에는 전쟁보다는 곡식을 수확하는 일이 더 중요하므로 전쟁도 잠시 멈추었고 말도 쉬면서 편히 먹었기에 살이 찌게 됐다. 그러나 흉노족은 추운 북쪽지방에 살고 있어 겨울철 양식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의 북방 변경지역 농경지대를 침범해 식량을 약탈했다. 따라서 말이 살찌는 이 시기가 되면 중원사람들은 언제 흉노가 침략할까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추고마비가 천고마비로 변형돼 지금은 가을하면 떠오르는 풍요와 낭만을 상징하는 대명사가 됐다.

하지만 천고마비의 호시절을 마냥 즐거운 마음으로 지낼 수가 없다. 해마다 쌀 소비는 줄어들어 농심은 풍년이 들어도 걱정이 쌓이고 주름만 깊어진다. 올해 쌀값은 어떻게 될까? 반면에 도시 서민들은 추석 장바구니 물가가 고공행진을 하고 있어 가계 부담이 늘고 있다는 말이 뉴스마다 올라온다.

또한 옛날 흉노가 그러했듯이 지금 북쪽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고 국제 정세나 정치권은 우리네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만의 논리로 돌아가고 있다. 말이 살찐다고 덩달아 어깨춤을 출 수 없는 사정이 여기에 있다.

민영인(귀농인·중국어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