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505)

2017-10-12     경남일보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5 (505)

“나도 그런 소리는 목욕하러 온 형님들한테 들어서 잘 알아요. 그렇지만 내 아들 며느리는 안 그럴거라 생각했지요.”

힘없이 울먹거리던 아내는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아유, 우리 언니 분께서 부잣집 딸, 서울 며느리 깍쟁이, 임자 제대로 만나셨네요.”

“실은 나도 참 황당하네. 부모의 사랑이 배척받는 현실에 대한 감응이 아직 실감 안 나기는 마찬가지라. 나나 우리 집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는 며느리가 그렇게 예쁘던데 며느리는 와 그리 시가가 싫으꼬? 시집 오모 여기가 바로 지 집인데 말이다.”

“우리 오빠도 그 부분에서는 아직 조선 사람이시네. 모든 게 낯설고 누가 적인지 아군이지 구별 할 수 없으니 시집에 대한 부정적인 학습만 앞을 막고 몸 사려지죠. 오빠 며느리처럼 귀하게 자란 사람들의 정서는 다른 사람들과 잘 안지내도 하나 불편할 게 없고 얻을 것도 없잖아요. 앞으로 보세요, 여자들 세상 열릴 겁니다. 우리 아버지들이 만들었던 남존여비나 남아선호에 대한 역반응이 일어나는 거예요. 엄마 돌아가시고 나서 여기 있는 동안 저도 많은 깨달음을 갖기는 했지만 아직 여자들은 시집이 자기 집이라는 생각을 안 해요. 우리 엄마도 돌아가실 때까지 내 집이라는 개념이 없었어요. 꼭 너거 집에 시집와서라고, 너거 집이라는 말을 썼으니까요.”

“동생도 그런 말하니 대화가 훨씬 수월하네. 여자들 심리란 참 묘해. 자기들이 안방 차지하고 자식 낳아 기르고 살림도 다 살면서 그렇게 주인의식이 바로 안설까? 옛날 사람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많이 배운 요새 딸들이 어머니들보다 세상을 더 어렵게 사는 것 같애.”

“그건 제 생각도 그래요. 결혼해서 부딪쳐보면 어떨지 모르지만, 유식한 만큼 불평불만은 더 많고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랭이 아줌마들이 현실에 대한 적응은 더 잘하거든요. 저 역시 엄마 일을 겪고 나서 깨달은 건데 엄마보다 훨씬 제가 못했어요. 자기 정체성에 대한 부정도 온통 남자들 탓으로 돌리고. 저도 한때 독신클럽 총무도 했었던 적이 있어요.”

“가만히 보니 사회적 추세가 그런 걸 우리 며느리가 창문 활짝 열어서 보여준 격이네. 이건 내 욕심이지만 옛날 어머니들의 인내심에다 유식한 젊은 여성들의 지혜가 합친다면 더 바랄 것 없이 사회분위기가 좋아질 낀데 아쉬움이 많아. 우리 며느리도 박사 학위까지 받은 지식꾼이지만 너무 자기 본위로 이기적이라. 사실 집 사람한테는 내색을 안했지만 돈 벌 걱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남한테 짓밟히지 않기 위해 공부를 더 해야 되는 것도 아니고, 뭘 더 채우겠다고 욕심을 내는 겐지, 당최 옆 돌아 볼 생각은 안하고 위만 쳐다보고 있어. 사는 게 무엇인지 사는 목적이 무엇인지 이유를 모르겠어.”

“오빠, 그건 지금 시작에 불과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