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유등

2017-11-01     경남일보
 



누가 저곳에 어머니 젖통을 달아 놓았나

근육과 뼈대를 키웠던 농축된 단맛은 한 때

눈부신 추억들로 익어

빈 하늘 모서리에 매달려 있다

환하게 내 유년을 밝히는 유등 하나

-서봉순


허공의 절벽 끝에 유등이 걸렸다. 계절의 막바지인 듯 매달려있는 홍시를 향하여 화자는 단번에 어머니의 젖통이라 말한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어머니를 보내 주셨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새끼들을 낳아 기르며, 한 시대를 건너오는 동안 수많은 질곡의 세월을 견딘 어머니의 표상인 것이다.

집 떠나보낸 자식들의 무소식에도 얼른 전화기를 들지 못하는 어머니의 심중을 누가 알까. 이젠 전화만 와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는 어머니. 영원히 함께 못할 거라는 생각이 뒤늦게야 드는데, 찬이슬에 자꾸만 빛을 잃어가는 저 유등의 기름을 누가 채울 것인가!

영상(홍시)과 ‘유등’이라는 제목만으로도 촌철살인적인 감동이 느껴지는 디카시다. 짧은 경구로도 사람을 크게 감동시킬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천융희 《시와경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