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21)

2017-11-02     경남일보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6 (521)

어이없어진 어른이 몸을 돌려 뜰 채비를 하면서 뱉어냈다.

“그럼 됐어. 가 인마. 어린놈이 어데서 어른한테 두 눈 딱 불거시고 대드노. 이 자슥아. 지 보다 쪼맨한 가시나한테 이리 당하고, 옹차게 쳐 묵는 거는 다 오대로 보냈노.”

코피 난 남자아이를 나무라며 어른이 어물어물 자리를 뜨자 용재는 다시 어른의 앞을 딱 막아섰다. 아주 완강하고 결기 찬 동작이었다.

“아저씨 와 우리 동생한테 사과 안하고 갑니꺼. 어른이라꼬 그리 함부로 행동해도 되는 깁니꺼?”

“일마 자쓱이, 그라모 함 물어보자. 반편이를 반피라꼬 캤는데 그게 뭐 잘못됐어. 그라모 이놈아 내가 사과하모 니는 야 치료비 물라카나?”

맹랑한 놈 처음 보겠다는 듯 아이를 얕보고, 아이가 요구하는 사과는 하지 않은 채 어른은 연신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는 용재의 뺨이라도 칠 듯이 다가서며 찍어본다. 눈길도 험악한데 악어처럼 앙다문 이빨마저 허옇게 드러났다.

“보자보자하니 이 새끼가, 사과 안하면, 사과 안하면 니가 우얄 낀데?”

어른과 아이, 보호자끼리의 맞싸움 형태가 벌어질 찰나였다. 보다 못한 양지가 그들 앞으로 나섰다.

“어른이 그러시면 안 되죠. 아이들 말이라도 이치에 어긋나는 말 하나도 없는데 왜 무시하고 윽박지르기만 하세요?”

“당신은 누군데 나서는 거요?”

기분 나쁜 듯 후려 보는 남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용재가 단박 대꾸를 했다.

“우리 이몹니더. 우리 이모는 대학원도 졸업하고 서울에서 큰 회사 실장도 했어예.”

약간 뻥을 친 용재의 목소리에는 득의만면한 자긍심이 싱그럽게 피어올랐다. 양지의 위아래를 흘끔 훔쳐보던 남자는 픽 웃음을 흘리더니 자기 아이의 등을 쥐어박으면서 자리를 뜬다. 애초부터 싸울 상대가 아닌 것을 어른스럽지 못하게 대적했던 쑥스러움을 새삼 깨달은 듯 자기 아이를 나무라기도 했다.

“이 새끼야 늘 뚜드려 맞음서 뭐한다 저런 아아들하고 노노 말이다.”

미진한 결말을 남기고 자리를 뜨는 남자의 앞으로 분이 덜 풀린 용재가 씩씩거리며 내닫는 것을 양지가 슬쩍 잡았다.

“그만해. 어른한테 너무 그래도 안 돼.”

주의를 받은 용재가 선뜻 곤두섰던 성깔을 가누면서 양지를 보고 히죽 웃어보였다. 용재가 받고 자랐을 법한 밥상머리 교육이 느껴졌다.

구경하던 아이들마저 하나 둘 물러가고 황토색 느티나무 마당에는 아이들이 일으켰던 아무 소란스러움도 없었던 것처럼 매미소리만 머릿속이 어찔하게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