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단] 탈수 중입니다(박명미)

2017-12-10     경남일보
탈수 중입니다(박명미)

세탁기 속에서 들리는 비명
살균표백된 가족들이
부르르 진저리 치면서 돌고 있다

엄마 한 쪽 눈이 없어졌어요
오, 아가 내 콩팥을 가져가렴
내가 너무 고프다 에미야 네 심장을 다오
어머니의 머리가 줄어들어 어머니를 찾을 수가 없어요
물컹거리는 내장을 입속으로 쏟는 당신
내 탯줄을 돌려줘요

서로의 몸속을 휘젓던 팔다리들
늘어난다
늘어나, 서로의 몸을 칭칭 동여맨다
팽팽히 당겨진 육체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돌고 또 돈다
육체를 빠져나가는 시간, 시간들
검은 구멍 속으로 소용돌이친다
정적을 알리는 신호음

가지런해진 식구들이
만장처럼 펄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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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란 이름으로 엉키어 산다. 서로를 옭아메고 메이면서 저 드럼 세탁기의 소용돌이처럼. 서로를 휘감아 숨통을 죄이다가도 언제나 일상의 때들은 표백되어 허공에 순백으로 펄럭인다. 가족 그 어려운 명제. (주강홍 진주예총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