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 그리고 윤형주
황광지 (수필가)

2017-12-26     경남일보

또 새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가수 윤형주에게서 시인 윤동주의 이야기를 들었다. 공휴일이라 여유롭게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는 중에 반가운 얼굴이 나타났다. 기타를 들지 않고 출연한 가수 윤형주의 얼굴이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올해가 시작되면서부터 줄곧 강희근 교수에게서 윤동주 시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왔다.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는 해에 특별한 프로젝트를 맡아 수행하던 강 교수는 다른 일로 만나도 시인 윤동주에 얽힌 에피소드를 여러 번 꺼내 들려주었다.

그러다보니, 그 방송에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윤형주의 부친 윤영춘 시인은 5촌 조카인 윤동주가 다니는 학교의 교사이기도 했지만, 동주를 시인으로 존경의 마음을 보낼 정도로 지극하게 아꼈다고 했다. 교토 감옥에서 숨진 윤동주의 시신을 수습하러 동주의 부친과 함께 갔다고도 했다.

형주는 6촌형 동주의 이야기를 아버지로부터 아주 많이 들으며 살아왔단다. 만드는 노래마다 히트가 되고 한참 활동이 활발할 때, 아버지에게 동주형의 시로 노래를 만들어 부르면 시도 훨씬 더 보급이 되지 않겠느냐고 의견을 여쭈었다. 부친 윤영춘 시인은 한참 침묵하다가 입을 떼었다. “시도 노래다.”

그 말씀이 가슴에 새겨져, 형주는 동주형의 시 한 편에도 곡을 붙일 수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서시’에 곡을 만들어 불렀지만 그는 동주형의 시에 손을 대지 않았다. 다만 ‘윤동주 님께 바치는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

방송을 보는 동안 그 노래가 자막과 함께 잔잔히 흘렀다. 형주의 맑은 목소리였다. 숙연해졌다. 나는 흑백으로 된 영화 ‘동주’의 장면들이 떠올라 코끝이 찌릿해 왔다. /당신의 하늘은 무슨 빛이었길래/당신의 바람은 어디로 불었길래/당신의 별들은 무엇을 말했길래/당신의 시들이 이토록 숨을 쉬나요/밤새워 고통으로 새벽을 맞으며/그리움에 멍든 바람 고향으로 달려갈 때/당신은 먼 하늘 차디찬 냉기 속에/당신의 숨결을 거두어야 했나요/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했던 당신은/차라리 아름다운 영혼의 빛깔이어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왔던 당신은/차라리 차라리 아름다운 생명의 빛깔이어라.

나는 윤영춘 시인이나 가수 윤형주가 동주의 시를 성채처럼 여기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러 방면으로 기림이 펼쳐졌던 윤동주 탄생 100주년 올해도 저물어가고 있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기에, 더 귀하고 소중한 시인 윤동주를 올해가 아닌들, 또 다음 100년이 지난들 잊을 수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