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아듀, 2017년

2017-12-27     경남일보
아듀, 2017년

떠나가야 할 때가 이르렀습니다.
바람에 몸을 실어 먼 곳으로 가야 하니
다시 보잔 말씀일랑 꺼내지도 마십시오.
그간 잘 거두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부디, 평안히 계시길!
-김종순


아듀(Adieu)는 프랑스어로 ‘신의 곁에서 다시 만나자’라는 의미를 품고 있으니 단순한 작별이나 이별이 아니라 영원한 이별을 뜻한다. 그러니 ‘아듀, 2017년!’이 적절한 표현방법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나간 것들, 지나간 대로 덮어두지 못하고 쏜 화살 같았던 일 년을 자꾸만 뒤돌아보게 되는데….

여기, 박주가리 생의 마지막을 보라. 제 몸을 열어 마지막 문장을 후회 없이 휘날리는 저 눈부신 열변. 그렇다면 End가 아니라 And로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고진하 시인은 ‘새가 된 꽃, 박주가리’라는 시를 통해 이렇게 노해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떤 생(生)이 저보다 가벼울 수 있을까/ 어느 별의/ 토기에 새겨진 환한 빛살무늬의 빛살이/ 저보다 환할 수 있을까’/ 천융희 《시와경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