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56)

2017-12-12     경남일보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7 (556)

“하이고 그게 뭔 어려운 부탁입니꺼. 사는 꼴이 하도 이래서 내 쪽에서 미리 말은 못하겠지만 어린 게, 지가 좋담사 우리야 좋지요. 숟가락 하나 더 놓음 되는 걸요.”

“제 뜻은 그러잖아도 본 식구가 많은 데, 연만하신 어른들이 본 식구들 건사하시기도 힘에 부치실 건데 아이를 하나 더 보태면 더 힘드실 걸 빤히 알면서, 그게 송구스러워서요.”

“아이고, 괴한 말씀이시오. 곡석이나 사램이나 다 제 풀에 살기 마련인게요. 우리 아아들 봅소. 아다시피 늙은 양주가 거저 밥이나 삶아 멕이고 옷이나 씻거 입히지 별로 해주는 것도 없건만 집에서나 핵교서나 크게 욕 안 먹고 잘 크는 거 보시오. 저들끼리 투닥거리다가도 언제 그랬나 싶게 서로 돌보면서 잘하고 있어요. 암요, 어린 게 얼마나 혈육이 그립겠소. 핏줄이 땡긴 걸 인력으로 몬 하는 게요. 지 맴이 안 씰리모 우리가 오라오라 한다꼬 안옵니더.”

양지는 노인네를 덥석 끌어안고 싶었다. 이 늙고 찌든 육신의 어디에 이런 보드랍고 따스한 도량이 갖추어져 있는 것일까. 이런 마음씨는 이기적이고 냉정한 젊은이들에게서는 기대할 수 없는 큰 어른의 자비로움이다.

“우리 아아들이 본데는 없어도 심성이 그리 나쁘지는 않은께 지 세이나 오빠들 따라 댕김서 같이 지내모 훨썩 좋지요. 지도 덜 외롭고 우리 아아들도 좋아할기거만요.”

“몸이 불편한 애라서 일을 도우거나 그러지는 못할 거라서-.”

“그거는 걱정 할 거 없심더. 우리 웃땀에 폴 하나 없는 사람이 남자 여자 둘이나 있는데 남자는 노름도 잘하고 일도 잘하고 몬 하는 기 없어요. 화투짝을 발가락 새에다 쫙 끼아놓고 팔자내기로 투전을 한다네요. 또 여자는 여자대로 인공 때 오른쪽 팔이 팔꿈치 아래로 없어졌는디 아아들 다섯을 서답빨래 넘 손에 맡기서 푸답 안하고 이녘 손으로 다 맵짜게 손봐서 키았소. 이 없으모 잇몸으로 산다꼬 야는 팔이 좀 짤라서 그렇지 영 없는 거는 아닌께 병신이라 할 것도 없지요. 이 세상은 곰보도 째보도 다 제 보추대로 살아가게 조물주 영험한 신령이 따악 점지해 놨십니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