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정일우 신부
황광지(수필가)

2018-01-16     경남일보

한국 사람보다 더 한국말을 맛깔나게 적재적소에 넣어 구사하는 미국 출신 신부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았다. 고 제정구 전의원과 함께 빈민운동으로 널리 알려진 정일우 신부의 이야기다. 영화가 끝난 후, 젊은 신부의 증언을 들으니 더욱 가슴이 뜨거워졌다. 종교를 초월하여 가난한 사람들과 어떻게 나누고 살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느님 곁으로 돌아갔는지, 숭고한 삶이었다.

미국에서 태어난 존 데일리는 세인트루이스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해 1966년 사제서품을 받고, 이듬해 한국에 와서 40년 가까이 가난한 이들과 함께했다. 귀화하여 정일우라는 한국이름도 가진 진정한 우리나라 사람이 되었다.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많은 증인들이 그 신부는 성경에서 튀어나온 듯 예수를 꼭 닮은 분이라고 했다. 소외된 인간과 친구로 지내는 것 뿐 아니라 모습까지도 빼닮은 아름다운 분이라고.

서강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예수회 수련장으로 일하고 있던 정 신부는 자신이 ‘복음을 입으로만 살고 있다’는 강한 자괴감이 들었다. 그래서 1973년 강단과 수련장에서 물러나 청계천 판자촌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평생 동지가 된 고 제정구 선생과 처음 만났다. 이후 두 사람은 판자촌 생활을 시작으로 철거민 집단이주 마을인 복음자리, 한독주택, 목화마을을 건립했다.

80년대는 목동, 상계동 등 강제철거에 맞서 도시빈민운동에 함께하였다. 그 두 사람은 1986년에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공동으로 수상하기도 했다. 단짝 제정구가 갑자기 죽자 정 신부는 서럽게 목 놓아 울었다.

90년대에는 농촌으로 눈을 돌렸다. 충북 괴산에 농민들을 위한 ‘누룩공동체’를 세워 8년간 농부생활을 했다. 막걸리를 좋아하고, 풍물놀이로 신명을 내는 데도 앞장섰다. 쉽게 닭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소탈함으로 이웃과 한 몸이 되었다. 신분을 내려놓고, 타인을 껴안으며 공동체를 살려내는 친구였다. 너무나 한국적이고, 인간적인 삶을 살아냈다.

서울 ‘한몸공동체’로 다시 돌아와 예수회 수련장을 맡았던 정 신부는 2004년 일흔 살 생일을 앞두고 건강이 악화돼 자리에 눕게 됐다. 2014년 6월 2일 선종하기까지 그의 마지막은 놀라웠다. 예수님을 닮았던 준수한 외모는 사라지고 박박 밀은 머리에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는 아기가 돼 있었다. “그분은 예수님이 아니라 인간임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고 젊은 신부가 증언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신 앞에서의 겸손한 인간이었다.

 

황광지(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