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리산 조릿대 이야기
신용석(자연환경관리기술사, 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장)

2018-01-16     경남일보

 

생물학적으로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하는 자연해설과 곧게 자라는 모습에서 “대쪽 같은 절개”를 상징한다는 인문해설에 자주 등장하는 식물이 대나무이다. 우리나라에 있는 19종의 대나무 중에서 산악지역에 많아 흔히 산죽이라 부르고, 키가 작은 대신에 개체수가 가장 많은 것이 조릿대이다. 옛날 사람들이 이 식물의 줄기로 쌀을 물에 일 때 쓰는 조리를 만들었다 해서 조릿대로 부르고 있다. 지리산에서 조릿대는 주로 탐방로 주변에서 빽빽하게 무리를 지어 자라 토양침식을 방지하고 외래식물의 숲 속 유입을 막는 순기능이 있다. 그러나 산림바닥을 과도하게 넓게 덮으면 다른 식물들의 생장을 저해하여 생물다양성을 단순화시키는 역기능이 있을 수 있다. 제주도에서는 제주조릿대가 너무 확산되어 다른 식물들의 생장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다고 알려진바 있다.

조릿대를 포함한 대나무 식물들은 수십 년에 한번 꽃을 피운 후 죽는 생리특성을 갖고 있다. 이런 특성에 의해 몇 년 전부터 지리산국립공원의 일부 지역에서 조릿대 군락이 개화한 이후 하얗게 변하며 말라죽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워낙 드문 일이어서 고사원인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못하고 있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이 “봄철의 극단적인 가뭄현상이 스트레스로 작용하여 개화를 촉진한 것”으로 추정하거나 “뿌리는 살아있으므로 다시 줄기가 자랄 수 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공원관리자 입장에서는 그간 지리산을 비롯한 산악지대에 조릿대가 너무 세력을 떨쳐 생태계 단순화가 우려된다는 주장이 있어왔기 때문에 일부 조릿대 군락의 쇠퇴가 다른 식물들의 번성을 가져와 생물다양성 증진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에서는 “주요 지점에 조사구를 설치하여 조릿대 양호지역과 쇠퇴지역의 환경차이를 규명하고, 쇠퇴지역에서 다른 식물들의 생장관계를 관찰하는 등”의 대책을 추진할 계획이다. 지리산에 들어와 조릿대 군락의 허연 몰골을 보더라도 큰 걱정을 하지 마시기 바란다. 생태계는 끊임없이 변하며, 그 진화는 대부분 더욱 건강한 생태계를 지향한다. 기후변화와 같은, 과도한 인간간섭이 없다면.

 

신용석(자연환경관리기술사, 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