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폐선

2018-01-24     경남일보
 


폐선

쉰다는 말과
버려진다는 말의 거리는 얼마쯤이나 될까
그건 모두 고요히 몸의 비명을 듣는 일인지도 몰라
녹슬고 헐거워진 뼈마디들의 연주가
일생 맞서던 바람을 그러안고 비로소 오목하다

-신혜진(시인)



쉼조차 평범하지 않은 저 기우뚱. 어쩌면 생애 마지막 자세인지도 모른다. 한때 저이도 위풍당당, 돛을 올리고 수면을 장악했던 찬란한 여름이 있었으리라. 뭍으로 떠밀려 방치된 선체(船體)에 일생 맞닥뜨린 거센 바람의 흔적이 선명하다. 간혹 찾아드는 새의 날갯짓과 마른 풀잎의 스러지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을 저이. 하염없이 갯벌 속으로 파고드는 오므린 몸짓이 마치 요양병원 침상에 자리 한 우리의 어머니를 닮았다.

“여기 계시는 게 어머니께 더 좋아요. 편안하게 쉬세요, 어머니! 아프면 간호사가 즉각 달려올 거고요. 간혹 찾아뵐게요. 드시고 싶은 것 있으면 말씀하세요.” 국화꽃 같은 하얀 미소를 남기시고 지금은 이곳에 계시지 않은 어머니께 죄스러울 따름이다. 오목한 봉분 하나 남긴 채 저 먼 곳에서 영원한 쉼을 얻고 계실 한 척의 배, 어머니!/ 천융희 《시와경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