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단]어둠의 제국(노수옥)

2018-02-18     경남일보
어둠의 제국(노수옥)

어둠에 싸인 나라
한 바가지의 물이 미리 열어놓은 뒷문을
슬그머니 빠져나간다
물소리에 부족이 탄생한다
스스로 몸을 찢어야 살아나는 족속
둥글고 단단한 몸이 풀리고 닫힌 입이 열린다
꼼지락거리는 머리를 외발이 들어올린다
한 치의 틈도 없이 빽빽한 식물의 제국
물소리를 향해 발을 뻗으면
검은 하늘이 들썩거린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빛
어둠속에서만 번성하는 종족이다
하늘을 벗겨낸 손이 한 줌 머리채를 잡아챈다
뭉텅뭉텅 빈자리가 생기고
황금투구를 쓴 부족이 몰락한 곳에
종種이 같은 부족이 들어앉았다
그들의 연금술이 비릿하다
시루에 또 한 부족이 탄생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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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루에 콩나물의 생성을 의미 있게 엮었다. 가난을 덮고 어둠 속에서 다닥다닥 살아온 형제들이 우르르 왔다가 우르르 떠나는 그 집엔 빈 시루 같은 허전함이 비릿하게 남아 있겠다.(주강홍 진주예총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