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단]억새(이희숙)

2018-03-18     경남일보
억새(이희숙)

저녁이 깔린 들녘에 하이얀 붓은
가장 먼저 바람을 그리려 섰다

갈바람에 흔들리는 그리움 주체 못하고
소리 죽이며 어둠을 덮치고 누웠다

가녀린 이부자리 이리저리 나부끼다
이제 막 멈춰 섰거늘

스쳐 간 흔적도 없이 요염한 저 몸매
밤은 스러졌고 바람은 새하얗게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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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녘에 어둠이 젖어들고 억새는 바람으로 하늘을 지운다. 별이 하나둘 돋아나고 저 먼 은하를 후두두 멧새가 가르는 사이 기억은 소름처럼 돋고 추억으로 진화된 사연들이 시가 되었다. 그립다는 것은 가까이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립다는 것은 더욱 가까이 하고 싶다는 것이다. 해독하기 어려운 갑골문자처럼 긴 시간은 화석이 되었다. 시간의 퍼즐이 먼 그리움으로 온다.(주강홍 진주예총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