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반란
문복주(시인)

2018-03-19     경남일보

아내가 반란을 일으켰다. 가만 생각해보니 아내의 육십 회갑잔치가 끝나고부터 아내가 보이지 않게 변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눈을 뜨면 아내가 없다. 아침마다 어디를 갔다 오냐고 물어보니 헬스장에 다닌다고 한다. 수요일 저녁이 되면 “여보, 음악회가 있어 구경하고 올 게요” 하고 나간다. 토요일은 “영화상영이 있어 구경하고 올 게요” 하고 나간다. “와인모임이 있어 갔다 올 게요” 하고 나간다.

나는 지붕 올라간 닭 쳐다보듯 눈만 껌뻑인다. 이 여자가 뒤늦게 바람이 났나? 아, 이제 나는 천하에 고아가 됐구나.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자식들이 독립하여 떠나더니 이제 마누라까지 곁을 떠나는 구나.

아내가 저녁에 핸드폰을 보며 무언가 열심히 공책에 적는다. “뭐하는 거야? 네, 책을 보거나 TV를 보다가 잘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뜻을 찾아 적으며 배우는 거예요” 이거 참. 또 열심히 편지를 쓴다. “뭐하는 거야?”, “아는 친구와 서로 손편지를 주고받기로 했어요. 그래서 편지 쓰는 거예요”

요즈음 아내는 자수에 몰입하였다. 월요일에 자수 개인지도를 받고 돌아오면 앉으나 서나 수를 놓았다. 돋보기안경을 코끝에 걸치고 광목천에 노랗고 빨갛고 파란 초록의 갖가지 색실로 무엇인가를 열심히 수놓는다. 나는 수놓는 모습을 보며 자고, 수놓는 모습을 보며 눈을 뜬다. 무엇이 아내를 저렇게 만들었을까? 들여다보니 광목천에 연필로 그려진 어떤 형태들을 따라 색실을 끼운 작은 바늘이 쉬지 않고 천만번 넘나든다. 그럴 때마다 작은 연초록 풀잎이 생겨나고, 작은 붉은 꽃이 생겨나고, 초록의 들판이 생겨난다. 새가 날아다니고 아이들이 들판을 달려나간다. 아무 것도 없던 무명천에 기가 막힌 새 세상이 생겨나는 것을 보며 나는 놀라움에 감탄한다. 마침내 한뜸 한뜸 수놓아진 탁자보가 놓이고 풀꽃 돋아난 베개가 머리맡에 놓인다. 작은 꽃들이 핀 커튼은 창가에서 생명을 노래하고 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말없는 고요가 아늑하다. 키 작은 아내는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일찍이 통달하고 철학을 가지고 작은 것을 실천한다.

“가게 가면 예쁜 것 많은데 무엇하러 그 고생하며 수를 놓누?”, “많지만 내가 만든 것은 세상에 하나에요. 수놓는 게 재미있으니까 내가 좋아서 그냥 하는 거 에요. 인생은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얼마 남지 않은 생, 늦었지만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씩 해보기로 했어요”,

“세상에!”

 

문복주(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