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8 (605)

2018-03-12     경남일보

뒤따라 들어 온 호남은 선참으로 귀남을 후려 보며 따졌다.

“언니 니 어제 어데 갔다왔노?”

“어데 갔다 왔으면 내가 언내도 아닌데 일일이 니한테 보고하고 댕기야 되나?”

“진양호 찻집에서 누굴 불러냈더노 그 말이다.”

굳은 얼굴로 호남을 주시하고 있던 귀남의 얼굴이 히물 흩뜨려졌다.

“아아, 그게 벌써 니 귀에 들어갔는가 베. 이래서 좁은 도시는 하는 수 없다니까. 니 설마 내 뒤에다 파파라친가 뭔가 그런 거 붙인 거는 아이가? 그 사람이 그리 유명한 사람이가?”

“그 사람은 내 집에 드나드는 고객인데 다른 사람도 아닌 언니가 그라모 안 돼!”

“듣고 보니 기분 이상해지네. 이 가시나 봐라. 듣기 따라서 니가 점찍었는데 나한테 뺏길까봐 겁먹은 걸로 들리네.”

“이기 또 도졌네. 그 분은 내 고객이고 고객에 대한 주인의 예의라는 게 엄연히 있다.”

“고객은 사내 아니냐? 점잖은 굉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꼬, 그 고객도 매력 있는 여자를 보면 흥분할 줄 아는 사내새끼다. 같이 앉아서 술을 먹는데 내 어깨에 손을 걸치고 귀 간지럽게 속삭거린 사람은 누고? 니도 그때 같이 있을 때 봤다 아이가.”

“그때는 그때고-”

말이 막힌 듯 잠시 주춤했던 호남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분은 술이 취하면 누구한테나 그란다. 착각하지 마라.”

“러브 샷도 먼저 하잔 사람이 그 사람이다.”

“그래서 착각이라 안하나. 그 사람은 가정도 있고 좋은 직장도 있는 사람이다.”

“자기가 얼마 있다 미국 바이어를 만나러 갈 건데 영어 교습도 나한테 받고 싶다더라. 내 같은 미인한테 배우면 귀에 쏙쏙 잘 들어올 것 같다 그 말은 누가 했겠노? 니도 줄창 그 사람 두둔만 하는 거 본께 좋아하는 것 맞네 뭐.”

두 사람의 말씨름 같았으나 점점 심각해지는 말싸움을 듣고 있던 양지는 그제야 그 말이 이 뜻이었구나 싶은 지난밤을 상기했다.

어젯밤도 귀남은 씻은 얼굴에 스킨로션만 바르던 평소와 달리 정성스럽게 밑화장을 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늘 건조한 가을 날씨 탓을 하면서 피부 관리에 신경을 썼다. 고운 향기를 내며 잠자리에 든 귀남이 양지를 보고 그랬다.

“너한테 물어보겠는데, 날 언제까지 이렇게 둘 거냐?”

“그게 무슨 소리고?”

입으로 가져가던 단감 조각을 어중간에서 멈춘 양지는 무슨 잘못을 추궁하듯 말하는 귀남을 멀뚱하게 바라보았다. 그만큼 배려하고 있는데 도대체 무엇을? 말귀를 얼른 못 알아듣고 시선만 맞추는 양지의 반응에 찡그린 얼굴로 귀남이 계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