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8 (612)

2018-03-12     경남일보


어느덧 오빠가 어깨를 들먹거리며 흐느끼고 있었다. 덩치 큰 장년의 남자가 체면도 위세도 아랑곳없이 사그라드는 불꽃을 되살리기 위한 간절함을 자아낸다. 이미 양지의 상태를 인지하고 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비통함이 절절하게 울려나오는 음성이다. 애절한 이 통음은 곁에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도 반석에 고이는 물기처럼 슬픔의 감정을 전이시켜 놓는다. 병문안 오는 사람들마다 양지를 벌떡 일어나게 할 명약이라도 되는 양 양지가 염원하던 보육원 설립에 동참한다는 약속만은 빼놓지 않았다.

양지는 삼 일만에 조금 정신을 차렸다. 호흡기를 떼자 초췌해진 작은 얼굴이 더 조막만 하게 보였다. 양지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가족들이 줄줄이 병실로 들어왔다. 양지는 희미하게 뜬 눈으로 곁에 있는 수연을 확인하더니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이 애를 지켰다니-.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뭘 하고 살았나 싶더니…….”

어렵게 입을 연 양지는 너무 낮아서 들리지 않는 음성에다 한 호흡 한 호흡 있는 힘을 다 모으더니 눈짓으로 호남을 불렀다.

“나, 거기……. 좀……. 데려다……. 주라.”

“거기, 어디? 아아 알겠다. 그렇지만 이 몸으로 거기는 무리다. 이제 정신도 차렸으니 조금 더 회복되면 내가 꼭 데리고 갈게, 약속할께.”

양지는 떼쓰듯이 강하게 얼굴을 찡그렸다. 어렵사리 방향을 짚어 낸 호남이 어이없는 듯 또렷이 반대를 했다.

“거기는. 몸이나 회복하면 가도 돼. 어서 몸 회복될 궁리나 하시지.”

가망 없을 것 같은 호남의 기색을 보고 절망의 빛을 보이던 양지는 다시 온 힘을 끌어 모은 듯한 얼굴로 마른 목젖을 축이며 애원을 했다

“거기…… 갖다오면…… 힘…….이 나알…… 것 같아. 내 부탁 좀…… 꼭…… 들어주라.”

남자처럼 단순한 성격의 호남이다. 병이 더 호전 될 것 같다는 환자의 부탁인데 더 거절할 이유도 없잖은가.

“그래 좋다. 꼭 그렇다면 못 갈 것도 없지.”

우려하던 의료진도 환자의 간절함은 막지 못했다. 대기시켜놓은 차에다 양지를 옮겨 태운 호남은 세 자매가 같이 살 전원주택을 짓겠다며 터 잡아놓은 곳으로 향했다. 들 가운데로 난 좁은 길을 가로질러 최대한 가까운 위치에다 차를 세웠다.

“언니야, 저기다 언니가 원하는, 아니 우리들 모두 같이할 보육원부터 먼저 짓도록 하자. 약속할게 알았지? 늦었지만 약속은 꼭 지킨다. 언니만 일어나면 그 일부터 시작하자. 언니야, 제발 눈뜨고 저기를 봐라. 언니가 원하는 곳, 그 터에 왔단 말이다.”

양지에게 힘을 주는 뜻으로 호남은 열심히 말을 붙였지만 양지는 눈을 뜨지 못했다. 스치는 바람결에 솜털이 움직여도 아무런 기색이 없다. 멀리로 바라보이는 자신의 땅과 언니를 번갈아보며 호남이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