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지리산 구상나무

2018-05-09     경남일보
지리산을 비롯한 한라산, 덕유산 등의 1000m 이상 고지대에서 자라는 구상나무는 우리나라 특산식물로 학명은 아비에스 코리아나(Abies koreana)이다. 세계적으로 통일된 이름을 정하는 학명에 ‘코리아’가 들어가는 한국특산식물은 몇 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 특산식물은 자생지를 엄격하게 보전하고 유전자원의 외국유출을 제한하며, 필요한 경우 개체수를 늘려 경제적 활용성을 높여야 한다.

구상나무는 좌우대칭을 이루어 삼각형 형태로 자라고, 빽빽하게 난 솔잎이 매우 부드러워 어린나무를 실내정원이나 조경용으로 사용하기 좋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외국에서 품종개량이 되어 세계적으로 크리스마스 트리로 애용되고 있으니 유전자원 보유국인 우리 입장에서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리산에는 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한국전쟁과 빨치산 전투로 망신창이가 된 지리산에 평화가 오는 듯 했으나 이후의 혼란기에 마구잡이 도벌이 지리산에 성행했다. 이 때 고사목만을 자르겠다고 허가를 받은 후 해발 1800m의 제석봉 생나무들을 마구 자르고 제재소까지 차려놓은 행위가 큰 사회문제가 되었다.

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범법자들이 현장에는 모두 고사목만 있는 것으로 속이기 위해 생나무들을 모두 불태워 결국 거대한 숲이 ‘나무들의 무덤’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렇게 서 있던 고사목들도 대부분 사람들이 잘라갔고, 이제 십자가처럼 끝까지 남아있는 고사목은 수십그루에 불과하다. 이 고사목들의 대부분이 구상나무이다.

이제 지리산의 구상나무는 또다른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본래 서늘하고 수분이 많은 곳에 자생하는 구상나무에게 지구온난화 현상이 시련을 주고 있는 것이다.

국립공원연구원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반야봉과 같이 강풍과 건조에 노출된 지역에 자생하는 구상나무는 겨울철의 적설량이 적고 봄철 가뭄이 심할 때 말라죽는 진행이 빨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행인 것은 세석평전과 연하천 주변과 같이 습기가 많고 바람이 적은 곳의 구상나무 군락은 아직 생육상태가 좋고 어린나무들의 발생도 양호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에서는 건강한 구상나무로부터 채취한 유전자원(씨앗)을 증식하고, 다양한 생육환경에 어린 구상나무를 심어서 생장특성을 모니터링하는 실험연구를 하고 있다. 외국으로 마구 유출되고, 자생지에서도 도벌과 방화로 아픔을 겪은 우리의 구상나무를 제대로 대접하는 시대가 되었으면 한다.



신용석(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