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단]베개(임지훈)

2018-06-03     경남일보

베개
/임지훈

베개에 얼굴을 묻고
사람을 떠올린다
긴 생각에 잠이 갈대처럼 텅 비어간다
그늘에 꽂혀 있는 벚나무
가지 위에 위태롭게 걸린
초승달이
소리 없이 꽃잎을 자르고 있다
손톱보다 작은 봉오리
눈감고 연못으로 내려앉는다
옆에서 자고 있는 사람에게 들리지 않도록
울어야 하기에
봄밤은 길고
생은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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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벼락에 붉은 장미가 초여름을 달군다, 붉은 열정이 온 세상을 핥고 있고 기억의 바닥마저 끌어 올린다. 옛 시간들이 줄기처럼 따나라나서고 몽우리로 맺힌 사랑들이 피웠다가 닫혀 지는 불면의 시간 속에서 한 잎 한 잎 꽃잎은 피고 진다. 베개로 가로막아 긴 울음을 안으로 삭혀야 하는 얼굴들, 가려져 있어서 더 아름다운 것들, 숨겨져 있어서 더 애닮은 것들이 이 밤을 더 길게 한다. 5월의 장미를 붉게 피워서 이렇게들 어수선 하게 하는지. 모두가 고픈 계절이다. (주강홍 진주예총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