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타, 그리고 싱가포르

2018-06-12     경남일보
얄타는 크림반도 남쪽 흑해연안에 있는 인구 8만의 항구도시이다. 1945년 2월, 세계2차대전이 끝나갈 무렵, 미국과 영국, 소련의 정상이 모여 종전 후의 독일과 일본에 대한 뒤처리를 이곳에서 논의해 널리 알려진 곳이다.

▶이 회담결과는 후에 동서독과 한반도의 분할과 소련의 쿠릴열도, 사할린의 점령으로 나타났다. 루즈벨트와 스탈린, 처칠의 3자회담의 결과는 소련의 일방적 승리로 끝나 그 같은 결과를 초래한 원인에 대한 논란이 이어졌다. 루즈벨트의 건강이 본격적으로 거론된 것도 이 회담 이후였다. 건강이 협상을 망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얄타회담의 진실은 1990년 구소련의 붕괴로 만천하에 드러났다. 소련의 비밀문서가 공개된 것이다. 회담의 비밀문서를 소련측에 넘긴 로젠버거부부가 처형됐다. 소련은 회담전 이미 미국의 전략을 이들 부부를 통해 알 수 있었고 그 약점을 이용 독일과 한반도의 분할통치라는 이득을 얻은 것이다.

▶미의회가 메카시즘에 휩싸인 것도 이 즈음이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어서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는 역사적인 북미간의 정상회담이 열렸다. 얄타회담이 잉태한 북한으로 인해 지구촌을 마구 흔든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얄타는 싱가포르로 이어졌고 미래의 어느 날 이 회담의 결과를 의논하기 위한 회담이 지구촌 어디에선가 열릴지 두고 볼 일이다.
 
변옥윤(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