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편지

이덕대 (수필가)

2018-08-13     경남일보
편지는 마음을 여는 문이며 마음으로 다가가는 길이다. 편지는 바람으로 왔고 향기로 날아갔다. 침을 묻혀가며 썼던 눈물 젖은 편지도 웃음 한가득 편지도 이제는 추억으로 남았다. 손으로 쓴 편지에는 글자만 넣어 보낸 게 아니다. 정성스럽게 말린 꽃잎, 갈잎도 넣고 사진도 마음도 동봉했다. 가끔은 왈칵 쏟아지는 울음도 한숨도 담았다. 그땐 온전한 자신 전체를 편지로 보내기도 했다. 참을 수 없는 더위에도 토방에 누워 봉당(封堂)쪽 문을 열고 파란 하늘에 둥실둥실 뜬 구름을 보면서 편지를 쓰면 마음은 봄이고 가을이었다. 단어도 어휘력도 부족했을 때 그럴듯한 단어 하나를 찾아내어 쓰고 고치기를 얼마나 했던가.

언젠가부터 손으로 꾹꾹 눌러가며 쓴 수제(手製) 편지가 사라졌다. 파랗고 검은색 잉크에 쓸 때마다 펜촉을 담가가며 마치 세밀화를 그리듯 정성을 다하던 젊은 날의 멋스런 편지를 보기가 어렵다. 두툼한 가죽 가방에서 무슨 보물 꺼내듯 편지를 꺼내 빙 둘러선 아이들 앞에서 호명하며 나누어 주던 집배원아저씨의 모습도 더 이상 볼 수 없다. 손으로 쓰던 편지는 삶과 고뇌, 사랑과 우정, 세상을 향해 내미는 손과 마음의 역할을 했다. 편지를 쓸 줄도 읽을 줄도 모르던 우리들의 할머니, 어머니들은 집배원아저씨가 가져다주는 편지를 걱정 반 부끄러움 반으로 받아들고는 마을의 식자께나 든 양반을 찾아가 읽어 주길 어렵게 부탁했었다.

손으로 쓴 편지를 읽을 때는 글이 품고 있는 함의(含意)에 따라 유장(悠長)하게 때로는 청승맞게 감정을 넣어 읽어야 제격이었다. 고향집 주소를 단 편지는 대부분 객지에 돈 벌러 나간 자식이나 군대 간 아들이 보냈었고, 아무런 감흥 없이 읽으면 그저 그런 내용이었지만 짓궂은 마을 양반이 감정을 이입하여 처연하게 읽으면 듣는 이는 눈물을 쥐어짰다.

이제는 컴퓨터, 스마트 폰 등의 문명 이기들이 모든 소식과 감정의 교류를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 젊은이들이 글 쓰는 것을 보면 글인지 그림인지 알 수가 없다. 편지를 정성스럽게 쓰는 과정에서 정서도 풍부해지고 필체도 좋아지는 것이다.

손으로 쓰는 편지는 단순한 글자의 조합이 아니라 쓰는 사람의 마음과 정성이 그 속에 담긴다. 아름다운 우정을 편지 한 장으로 나누던 그 시절을 회상하며 방학 중인 아이들에게 손 편지라도 한 통 써보라고 하는 것은 어떨까. 먼 훗날 직접 손으로 쓴 편지 한 장의 추억이 각박하고 건조한 디지털 시대의 삶에 낭만적인 가을밤을 만들어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