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기약(김인애 시인)

2018-08-29     경남일보
 


초여름에 당신이 오신댔어요.

이 계절의 끝자락을

한사코 디뎌 밟는 담쟁이의 몸빛처럼

눈부신 초록으로 오신댔어요.

-김인애(시인)



때를 정하여 약속하였던가 보다. 초여름이었던가 보다. 혹, 일방적인 약속은 아니었는지, 각도를 달리하여 묻고 싶어지는 저 담쟁이덩굴이 참 아득하다. 지척에 있든 아니면 머나먼 곳에 있든 중요치 않아 보인다. 이미 내 가슴에 들어와 온종일 가득 차 버린, 그리움의 대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인 것이다.

흙담을 타고 한 생을 건너는 골목 진풍경은 어쩌면 ‘오래도록’ 사랑하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저 벽을 다 덮을 때까지 당신이 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저 한잎 한잎 늘여놓은 걸음에 초록이 새겨져 버렸으니 어쩌나! 그러다 가을이 오면 붉은 심장으로 물들고 말 일이지만 처연히 겨울을 견디고 나면 또 하나의 기다림으로 당신을 기다릴 것이니, 가슴에 묻고 내 길을 갈 수밖에. 시와경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