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강홍의 경일시단] 비상구(천지경)

2018-09-30     경남일보
비상구
/천지경

밤안개가 아파트 계단까지 스며있다.
야근의 피로가 누적된 다리로
한 층 계단을 오를 때마다
지친 눈 깨워주는 사람
환한 세상 향해 비상을 꿈꾸며 달리지만
한 번도 그 문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
유심히 나를 내려다본다

노름꾼 아버지 행포에 시달리던 어머니
충혈된 눈동자로 바라본 세상의 불빛이 저랬을까?
마음은 늘 비상등 속 저 사람처럼
계단을 향해 달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식들 가파른 계단 내딛는 걸음 지켰을
어머니 부릅뜬 눈, 저 비상구 불빛
두터운 어둠 물리치고 있다

이제 집밖이 무섭다는 칠순의 어머니
침침한 눈으로 남은 세상 더듬어 간다
내 밤눈 어두운 계단 길 밝혀주는 비상등
귀가 시간이 늦을수록 비상구 불빛 더욱 환하다

 

계단의 비상등보다 더 환하게 지키시는 어머니, 늦은 귀가를 기다리는 사랑이 애잔하다. 한창 때의 꿈들은 저 어둠에 묻고 자식의 가파른 생의 길을 지키는 수고로움은 계단의 비상등처럼 늘 환하다.
/주강홍(진주예총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