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과 멜론

강신(명상지도사)

2018-10-04     경남일보

퇴근을 하는데 아파트 현관 문고리에 검은 비닐봉지가 걸려있다. “뭐지?” 호기심에 안을 들여다보니 제법 튼실한 머스크멜론 두개가 들어있고, 봉지 겉면에 노란 형광색 메모 쪽지가 붙어있다. 쪽지에는 또박또박 눌러쓴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503호 입니다. 몇 번 왔었는데 안계시더라구요. 울집 막둥이랑 큰 애들 때문에 항상 죄송스럽습니다. 되도록 뛰지 않게 하는데 막둥이가 쉽지 않네요. ㅠㅠ” 위층의 애들 엄마가 보낸 것으로 짐작된다. 언젠가 엘리베이터에 위층 애들 둘이 탔기에 정색을 하고 “니들 밤늦게 거실에서 뛰지 마.”라고 했더니, 놀란 눈으로 “우리 막내가 뛰어요.”라고 답을 했다. ‘막내?’ 당연히 애는 둘일 것이라는 고정관념의 틀 속에 갇힌 스스로를 발견한다. 아무튼 별 의미 없는 농처럼 던진 말인데 애들은 심각하게 받아들여 엄마에게 자초지종 고자질을 한 모양이다. 덕분에 멜론을 얻어먹게 되었지만 잠시나마 놀랬을 애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전 국민의 70%이상이 공동주택에 거주하면서 층간 소음이 이웃 간의 갈등요인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추세다. 예전처럼 씨족끼리 마을을 구성하고 가옥의 구조가 이차원적일 때는 웬만한 일은 참고 넘어갔는데, 현대 사회는 집 위에 집이 있고 집 아래 집이 있는 삼차원적인 가옥구조로 인해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로인해 조그만 소음에도 서로 싸우고 욕하고 심지어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일부는 흉기를 휘둘러 목숨까지 잃었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특히 최근 들어 층간소음이 사회적인 문제가 되어 다툼이 멈추지 않자 국가에서 법적 기준까지 마련했다. 주간 최고소음도 57
dB, 야간 최고소음도 52dB이며 여기서 말하는 최고소음도란 최대로 충격음이 발생하는 경우를 말한다. 참고로 시계초침이 20dB, 아이들 뛰는 소리가 57~ 60dB, 열차 통과시 주변이 100dB이라고 한다.

멜론을 얻어먹은 빚을 갚기 위해 위층 꼬맹이들에게 줄 과자를 샀다. ‘요즘은 설탕이나 나트륨 때문에 애들 과자도 가려서 줘야한다.’는 집사람의 의견에 따라 유기농 빵 몇 개를 사서 전해주었다. 얼마 전 불교 신문의 카툰이 내 처지와 흡사하여 여기에 간추려 적어본다. 어떤 사람이 큰스님을 찾아가 말했다. ‘위층의 아이들 뛰는 소리가 너무 시끄럽습니다. 방법이 없을까요?’ 이에 큰스님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이름도 물어보고 하면서 아이들과 친해지세요.’ ‘그럼 애들이 뛰지 않을까요?’ ‘아니요, 아는 애들이 뛰면 덜 시끄러울 것입니다.’

 

강신(명상지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