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명의

2018-10-04     경남일보
[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명의
 


명의

커다란 흑싸리 한 줄기
삭신에 피어났네
한평생 날이 선 팽팽한 신경줄
이제는 그만 놓아버리고 싶은데
눈치 없는 주인장 이리 또 나를 살게 하시네

-권현숙



찢어진 담벼락의 꿰맨 자국을, 화투짝에 그려진 흑싸리로 떠올린 시선이 꽤 다정다감하다. 무너진 담벼락을 쌓아 올리는 여느 모습과는 달리 옷감을 기우듯, 주인의 기발한 대처법이 그렇다. 거기다가 명의라는 제목은 디카시의 묘미를 한층 더해주기까지 한다. 이렇듯 디카시는 영상과 문자가 결합하여 재해석 되는 순간 깊은 감동을 주게 된다.

삶이란 게 나름 잘 달려왔다 싶어 뒤돌아보면 빈껍데기로 덩그럴 때가 많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릴 때처럼 지쳐 나른하고 정신이 몹시 불편하여 주저앉고 싶을 때가 다반사. 하지만 사방에서 손 내밀어 일으켜 세워주는 위로와 격려들이 있지 않은가. 인생이 언제나 광땡일 수 는 없는 법. 마지막 끗발을 쥐고 끝까지 살아보는 거다. 마지막 행의 반전이 이 시를 살려주고 있다. 사랑스런 詩월이다./ 천융희 시와경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