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KAI…돌파구는 있다

2018-10-10     문병기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위기에 빠졌다. 덩달아 더 높은 곳으로 비상할 것으로 기대했던 항공산업도 침체국면에 접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KAI는 불모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 항공산업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대표적인 기업이다.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한 기본 훈련기 ‘KT-1’을 우리 하늘에 띄웠고 초음속고등훈련기 ‘T-50’과 다목적 헬기인 ‘수리온’을 생산해 내수는 물론 해외로 수출하는 기적을 이루었다. KAI는 차세대 위성사업과 민수사업 확대, 항공 정비(MRO)사업 등으로 그 영역을 넓혀 2030년 매출 20조원, 세계 5위 항공우주체계종합업체로 도약한다는 원대한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심하게 ‘성장통’을 앓고 있다. 지난해 방산비리혐의로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를 받은데 이어 감사원마저 수리온 헬기를 부실덩어리 취급했다. 올초에는 해병대에 납품한 기동헬기 마린온이 추락하는 등 악재가 끊이질 않고 있다. 여기에 미 공군 고등훈련기교체사업(APT)까지 탈락하면서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위기에 빠진 KAI와 항공산업 돌파구는 있는 것일까.

◇지금의 KAI, KT-1, T-50, 수리온이 있어 가능

KAI는 지난 1988년 ‘KT-1’ 개발을 결정하고 1999년 양산에 들어갔다. KT-1은 연구부터 운용, 수출까지, 순수 우리 기술로 독자 개발한 대한민국 최초의 항공기이다. 제트기 못지않은 비행성능과 계기비행, 적은 유지비 등 ‘가성비’면에서 탁월한 장점이 있었다.

우리나라 조종사들의 훈련기로 사용된 것은 물론, 2001년 국내 최초로 인도네시아에 17대를 시작으로 2007년 터키 40대, 2012년 페루 20대 등 81대를 수출하는 쾌거를 달성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KT-1 성공을 기반으로 1997년부터 록히드마틴과 공동으로 체계개발에 나서 성공한 ‘T-50’은 우리나라를 세계 12번 째 초음속 항공기 개발 국가로 위상을 높였다. 2003년부터 양산에 들어가 2011년 인도네시아에 16대를 시작으로 이라크와 필리핀, 태국 등지에 64대를 수출했다.

‘수리온’은 지난 2006년부터 한국군의 노후 기동 헬기인 500MD와 UH-1H 기종을 대체하기 위해 유로콥터와 합작 개발한 한국형 기동 헬기이다. 개발비만 1조3000억 원이 투입됐으며 2010년 6월 초도비행을 마쳤다. 수리온은 2011년 경찰청 3대를 시작으로 2013년 5월부터 군전력화 작업에 납품되기 시작했다. 현재 수리온은 육군은 물론 경찰, 의무, 소방, 민수 등 다양한 목적의 파생 기종을 개발하는 등 90여 대가 운용되고 있다.

◇연이은 악재, KAI의 발목을 잡다

KAI는 KT-1과 T-50, 수리온 등 핵심사업들의 잇따른 성공으로 내수는 물론 해외 수출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이를 기반으로 더 높은 곳으로의 바상을 꿈꾸고 있지만 예기치 못한 악재들이 연이어 터지면서 발목을 잡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7월 수백 억 원대 원가 부풀기와 횡령혐의, 분식회계 등 방산비리가 의심된다며 KAI를 압수수색했다. 검찰의 전방위 압박으로 전 사장이 구속되고 핵심인물들이 줄줄이 소환되는 등 큰 홍역을 치렀다. 덩달아 감사원도 수리온이 전투용은 고사하고 단순 헬리콥터로서의 비행 안전성도 갖추지 못한 부실덩어리 몹쓸 헬기로 매도해 버렸다. 여기에 지난 7월에는 해병대 상륙기동헬기로 납품한 수리온의 파생헬기 ‘마린온’이 시험비행 도중 추락해 6명의 사상자를 내는 등 연이은 악재에 시달리고 있다.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에도 불구하고 분식회계나 방산비리 등 핵심은 비켜간 채 먼지털이식 수사만 1년이 넘게 계속되고 있다.

감사원은 수리온이 마치 심각한 결함을 가진 고철덩어리나 다름없다며 서둘러 발표했지만 대부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뒤늦게 밝혀지고 있다.

국익 따위엔 관심 없는 권력기관의 서슬 퍼른 칼날이 휩쓸고 간 KAI는 만신창이가 됐다.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우수한 방산제품들을 ‘쓰레기’라며 전 세계에 광고한 덕분에 내수는 물론 수출까지 중단됐다. 온갖 역경 속에서도 수십년 쌓아온 기술력과 신뢰도도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져 위기를 맞고 있다.

△또 다른 악재, APT사업 실패

이같은 악재에도 불구하고 KAI가 탈출구로 믿었던 것이 미 공군고등훈련기교체사업(APT)이었다. 1차 물량만 350대(18조원)인 대형 프로젝트로 향후 후속사업 등을 감안하면 파급효과가 엄청날 것으로 전망했다. KAI는 지난 2016년 6월 록히드마틴과 TF팀을 구성하고 APT사업 수주를 위해 사활을 걸었다. 납품 기종인 T-50A 시험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친데 이어 가격 경쟁력과 항공기 성능 등에서 경쟁업체보다 우위에 있다고 판단했다. KAI는 APT사업을 계기로 우리나라가 세계 항공시장의 주도권을 잡길 희망했다. 항공 산업시장의 절대 강자인 미국에 항공기를 수출하는 나라로 위상이 높아지면 꽉 막힌 항공기 수출시장에도 청신호가 켜질 것이며 항공산업 전체가 동반 상승할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경쟁사인 보잉의 저가입찰에 결국 고배를 마시면서 향후 항공사업과 해외 수출 등에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방·민수·우주사업·항공MRO…그래도 희망은 있다

연이은 악재로 KAI가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항간에는 돌파구가 없다며 KAI와 우리나라 항공산업의 위기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KAI는 개의치 않는다. 잘됐다면 날개를 달수도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근간을 흔들일은 아니란 뜻이다.

지금부터 쌓아온 경험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방·민수·우주사업을 비롯해 항공정비(MRO), 중·대형 군용기 성능개량·개조사업 등으로 점진적 확대를 꾀한다면 충분히 경쟁력을 갖춘 세계적 항공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국방사업으로 KT-1 기본훈련기를 기반으로 한 KA-1 전술통제기, T-50 고등훈련기를 개량한 경공격기에 대해 수출 전선을 확대할 방침이다. 또한 수리온 파생헬기의 내수 및 수출 확대, 소형 무장/소형 민수헬기(LAH/LCH),무인항공기(UAV)개발에도 집중할 계획이다.

APT사업 못지않게 심혈을 기울인 핵심 사업이 한국형 전투기사업(KFX)이다. 공군의 노후 전투기를 대체할 한국형 전투기를 개발하는 것으로, 개발비 6조원, 양산비 8조원, 운영유지비 9조원 등이 투입되는 초대형 군 전력사업이다. 현재 인도네시아의 개발분담금 지연으로 늦어지고 있으나 조만간 사업 추진이 가능할 전망이다.

국방사업이 KAI를 지탱해온 원동력이었다면 민수사업과 우주사업, 항공MRO, 성능개량사업이 미래 핵심 사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민수사업은 에어버스 A350 등 민항기 국제공동개발 및 생산, KC-100 소형 항공기 개발, 민항기와 군용기 대형 기체 구조물 생산, 고유 브랜드의 중·소형 민항기를 개발해 세계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다. 이어 우주사업으로 KAI는 지난 2015년 ‘차세대 중형위성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민간기업 주도로 2025년까지 총 3단계에 걸쳐 12기의 위성을 개발해 발사하는 것으로 사업예산과 운영비 등을 포함하면 약 1조원 규모에 이른다.

또 다른 미래핵심전략사업은 항공정비(MRO)와 중·대형기 성능개량·개조사업이 있다. KAI는 지난해 12월 MRO사업자로 최종 선정됐다. 현재 국내 항공사들이 정비 등을 위해 해외업체에 지급하는 비용이 연간 1조원이 넘고 총 정비비가 2조8000억 원 규모이며 성능개량·개조사업도 미래 먹거리산업으로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KAI는 넘어야 할 산들은 많지만 항공우주산업은 그만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조선과 자동자 등에 비해 고부가가치산업인 데다 갈수록 수요가 늘어나고 관련 산업들이 발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APT탈락 등 내·외부적 악재들로 인해 어려움에 직면해 있지만, KAI는 이를 타산지석 삼아 더 높은 곳으로의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

문병기기자 bkm@gnnews.co.kr